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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안열 가문의 기원 2

봉(鳳)은 한(漢)나라의 경조윤(京兆尹)이었다. 『사기』 인물지에 “봉은 진유(陳留) 사람으로 환제(桓帝) 때 경조윤이 되어 정치에서 관용과 인(仁)을 숭상하고 백성을 불쌍히 여겨 3보(三輔: 한 무제 때 지방장관)들이 감탄했다. 선시(先時)의 조광한(趙廣漢)과 장창(張敞)과 왕준(王駿) 등과 뒤의 연독(延篤) · 변봉이 모두 경조윤으로써 능력이 있었다...

변안열 가문의 기원

변안렬의 본관은 원주(原州)이다. 원주변씨의 조상은 황제(黃帝)로 소급된다고 하나 믿을 수 없다. 고려, 조선시대의 가문들은 자기 가문의 위상을 높이기 위해 그 조상이 중국으로부터 왔다고 조작한 경우가 많다. 그러니 중국과 연계된 가계는 신용할 수 없다. 족보에 나타나 있는 변안렬의 상계(上系)는 다음과 같다.     ...

변안열은 누구인가? 2

고 했으며, 두암(斗菴) 김약련(金若鍊)은   “삼사공(三司公) 변안렬은 고려의 운명이 장차 끊어지려 할 즈음에 반드시 충의롭고 준걸한 인물을 내어 어떤 사람은 힘을 다해 외적의 침입을 방어하고, 어떤 사람은 절개를 지켜 목숨을 바친다. 만세에 이르도록 신하들에게 모범이 될 만한 자가 세상에 없지는 않다. 그러나 한 사람의 몸으로 이 두...

변안열은 누구인가?

변안렬(1334-1390)은 고려 말에 이성계(李成桂)의 조선건국을 반대하고 고려를 지키려다가 죽임을 당 한 충신 중의 한 사람이다. 충신 중에 문신의 대표가 정몽주(鄭夢周)였다면 무신의 대표는 변안렬이었다. 그런데 두 사람의 운명은 크게 다르다. 정몽주는 죽은 뒤 곧 신원되어 그 자손 중에 정승의 반열에 오른 사람이 있는가 하면 절의를 지킨 사림(士林...

드라마 정도전에서 말하는 사대의 원칙

2월 9일 방영된 드라마 정도전에서 재미 있는 장면이 나왔다. 명이 고려 사신의 입국을 불허하면서 이인임이 사신으로 올 것을 요구했다는 설정. 이 때 정몽주가 ‘내정간섭을 하는 것은 사대의 원칙에 어긋난다’는 식으로 말하는 장면이 나온다. 그런데 정말 ‘사대의 원칙’이라는 것 중에 이런 것이 있었을까? 원래 내정간섭이라는 개념부터가 민족자결주의에 입각한...

정도전은 누구인가?

정도전의 집안은 봉화 지역의 향리였다. 고조할아버지는 봉화 정씨의 시조인 정공미鄭公美이후 대대로 이런저런 낮은 벼슬을 지내오다가 아버지 정운경鄭云敬대에 이르러 형부상서 등 중앙의 높은 벼슬을 지냈다. 정운경은 도전道傳, 도존道存, 도복道이라는 세 아들을 두었다. 정도전은 오래도록 외가가 천한 신분이라는 공격을 받았다. 《태조 실록》정도전 졸기卒記를 살펴...

정도전약력

정도전鄭道傳, 1342∼1398년 자는 종지宗之. 호는 삼봉三峰. 시호는 문헌文憲. 본관은 봉화. 여말선초의 정치가, 학자. 경북 영주에서 밀직제학 형부상서를 지낸 정운경鄭云敬의 장남으로 태어나 이색穡의 문하에서 수학하였으며 1362년 문과에 급제하여 전교시주부, 예조정랑, 지제교 등의 벼슬을 지냈다. 친원배명親元排明정책을 반대하다가 전라도 나주에 유배...

최영의 케릭터를 어찌 설정하고 싶은 걸까? - KBS 대하사극 정도전

이 드라마는 이전 작들에 비해 기대를 얻고 있다고 했는데... 스토리 전개가 좀 나은 지는 모르겠지만, 케릭터 설정에는 이상 조짐이 있는 듯. 무엇보다 이 시기를 다룬 사극에서 빼놓을 수 없는 인물 최영의 케릭터에 대한 설정이 좀 이상하다. 최영이 우왕 앞에 무기 들고 나타나서 협박이나 다름 없는 언사를 늘어 놓는 장면. 왕의 앞이니 무기를 내려놓아야 ...

패전을 모르는 맹장, 이성계 2

철통같이 북방을 지켜오던 이성계는 1376년(우왕 2)에 왜구를 토벌하기 위해 군사를 이끌고 남으로 내려왔다. 당시 일본은 내분을 겪어 정치적으로 매우 혼란스러웠다. 그 때문에 살기가 힘들어진 일본의 일부 영주들은 무사들을 이끌고 고려나 중국 해안을 침입해 노략질을 일삼았다. 이성계는 경상도와 전라도 일대에서 고려의 백성을 괴롭히다가 충청도까지 올라온 ...

고려의 마지막 충신 정몽주 2

승진을 거듭하던 정몽주는 두 번째 시련을 맞는다. 우왕 즉위 후 이인임(李仁任)과 지윤(池奫) 등에 의해 전개되던 친원적 외교에 반기를 들다가 유배를 당한 것이다. 이듬해 풀려나긴 했지만 그를 기다리고 있던 임무는 일본행이었다. 그의 소행을 괘씸하게 여긴 권신들이 그를 추천했다. 당시 일본행은 죽음의 길이었다. 비록 일본 쪽에서 먼저 화친을 청해 보내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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