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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도전의 최후

방원은 그가 정도전인줄 알고 김소근등 4인을 시켜 체포해 오게 하니 정도전이 도장밥에 숨어 있었다. 김소근등이 밖으로 나오라고 소리치니 정도전이 한 자끔 되는 칼을 가지고 있었으나 걸을 수가 없어 기어 나왔다. 김소근 등이 칼을 버리라고 하자 칼을 버리고 나와서 말하기를 “죽이지 말아 주십시오. 한마디 하고 죽게 해 주십시오”했다. 정도전이 방...

제1차 왕자의 난과 이숙번

이들이 출동하려 하자 부인이 준비한 중간이 부러진 철창(鐵槍)을 군사들에게 나누어 주었고, 제군(諸君)의 종자(從者)들과 노복(奴僕)들 10여인은 모두 몽둥이를 들었는데 김소근(金小斤)만 칼을 들었다. 방원이 말을 달려 독소(纛所)의 북쪽 길에 이르러 이숙번에게 “오늘의 일을 어찌해야 하겠는가?”물으니 이숙번이 대답하기를 “일이...

제 1차 왕자의 난과 방원 2

이 때 이무(李茂)는 평소 중립을 지킬 계획을 세웠으나 민무질을 따라가 은밀히 남은(南誾)등의 모의를 방원에게 고했다. 이무는 민무질의 가까운 친척이었다. 박포(朴包)도 양 사이를 왕래하면서 저들의 동정을 살폈다. 방원은 민무구를 시켜 이숙번에게 무기를 갖추고 자기집 가까운데 있는 신극례(辛克禮)의 집으로 오라고 했다. 그리고 대궐 서랑(西廊)으로...

제 1차 왕자의 난과 방원

방원이 전라도 절제사가 되면서 동북면 가별치(加別赤) 500호를 방번에게 이관했다. 그런데도 방번은 사양하지도 않았고 태조는 그 사실을 알면서도 또한 돌려주라고도 하지 않았다. 태조는 오히려 “외간의 의논을 너희들은 몰라서는 안 된다. 의당 여러 형제들을 깨우쳐 삼가도록 해야 한다”고 경계했다. 정도전‧남은‧심효생‧이제(李濟)‧이근(李懃)‧장지...

변안열의 후예,조선에서 벼슬 살다 7

뜰 앞의 늙은 소나무를 사랑해 그 집에 무송당(撫松堂)이라는 편액(扁額)을 달았다.(撫松齋는 2006년 8월 15일에 재건되었다) 이것은 날씨가 추워진 뒤에야 송백(松柏)이 나종에 시드는 것을 안다는 뜻을 취한 것이다. 성종 조에 늙었다고 검교호조참판을 제수하고 매달 고기와 술을 하사했다. 그 뒤 예조참판으로 옮겼으나 병이 걸려 1485년(성종 1...

변안열의 후예,조선에서 벼슬 살다 6

뜰 앞의 늙은 소나무를 사랑해 그 집에 무송당(撫松堂)이라는 편액(扁額)을 달았다.(撫松齋는 2006년 8월 15일에 재건되었다) 이것은 날씨가 추워진 뒤에야 송백(松柏)이 나종에 시드는 것을 안다는 뜻을 취한 것이다. 성종 조에 늙었다고 검교호조참판을 제수하고 매달 고기와 술을 하사했다. 그 뒤 예조참판으로 옮겼으나 병이 걸려 1485년(성종 1...

변안열의 후예,조선에서 벼슬 살다 5

변안열의 후예,조선에서 벼슬 살다 4

변안열의 후예,조선에서 벼슬 살다 3

차자 정(定)은 4남(希哲 · 希李 · 希潁 · 希達) 1녀(金進明에게 시집갔다)를 두었다. 장남 희철(希哲)은 첨지중추부사로서 부인은 선전관 최사청(崔思淸)의 딸 최씨다. 차자 희리(希李)의 자는 선보(仙甫)요, 호는 귀계(歸溪)다. 1435년(세종 17)에 태어나 1509년(중종 4)에 죽었다. 향년 75세. 태어나면서부터 남다른 자질을 지녀 아버지...

변안열의 후예,조선에서 벼슬 살다 2

차희(次熹)는 첨추공파(僉樞公派)를 이루었는데 4남(宏 · 定 · 寧 · 富) 2녀(辛潤祖 · 李閏昌에게 시집갔다)를 두었다. 장자 굉(宏)은 장가들기 전에 자손이 없이 죽고, 차자 정(定)은 자를 안지(安之)라 하고, 호를 송와(松窩)라 했다. 실묘해 변안렬 묘역에 설단했다. 1415(태종 15)에 한양 명례방(明禮坊)에서 태어나, 1474년(성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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