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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의 대일 저자세 외교의 근거와 비판 –맺으면서 2

특히 최근 국내 학계에서 신라의 대일 저자세 외교를 주장한 윤선태, 서영교 등은 고대한일관계사 전공자라기 곤란한 자들이다. 그러니 사료에 대해 면밀히 검토해볼 기회는 더욱 적었을 수밖에 없다. 그렇게 본다면 사료에 대한 기본적 지식도 없는 비전공자에 의해 ‘신라의 對日本 저자세 외교’라는 식의 주장이 양산되고 있는 셈이다. 이와 같이 국내에서조차 日本書...

신라의 대일 저자세 외교의 근거와 비판 -맺으면서 1

‘실증은 의무일 뿐, 선택이 아니다’라는 명제는 역사 연구자들에게 기본적인 명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실증인가, 이론인가’ 하는 식의 의미 없는 논쟁이 있어왔다. 그 원인은 실증을 하지 않아도 좋다는 의미에 있다기보다, ‘실증’이라는 명제가 그만큼 악용되어온 측면이 있었기 때문이라 생각된다. 고대한일관계사 같은 분야에 있어서는 특히 그렇다. 마치 사료...

신라의 대일 저자세 외교의 근거와 비판 6

또 사신의 지위를 파격적으로 격상시켜 일본에 파견했던 사실을 근거로 저자세 외교를 주장하는 점도 문제다. 이 주장을 한 서영교 자신이 지적하고 있듯이 그 시기에 한계가 있다. 즉 적극적으로 저자세 외교를 한 시기가 668-700년이고 그 이후 하강곡선을 그리면서 734년까지 지속된 것으로 본다. 그런데 이 말을 뒤집으면 734년 이후로는 신라의 외교 정...

신라의 대일 저자세 외교의 근거와 비판 5

여기서 752년처럼 신라왕자가 천황을 알현한 자리에서 경덕왕의 말이라며, ‘왕이 몸소 오고 싶었다느니, 천하에 천황의 토지가 아닌 것이 없고 천황의 신하가 아닌 것이 없다’고 끝없는 찬사를 늘어놓은 사실을 지적할 수도 있다. 여기에 이용된 기사는 日本書紀 나 續日本紀 등의 다른 기사와는 달리 무조건적인 조작으로 몰기에는 곤란한 점이 있다. 이 말을 믿고...

신라의 대일 저자세 외교의 근거와 비판 4

  흠명 22년(561) 신라가 久禮叱 及伐干을 보내어 調賦를 바쳤다. 司賓이 연회를 베풀었는데 예우가 평상시보다 덜하였다. 及伐干이 분하고 한스럽게 여기며 돌아갔다. 이해 다시 奴氐 大舍를 보내어 지난번의 調賦를 바쳤다. 이 기사들을 보면 일본에 조공을 바치러 보냈다는 사신의 지위가 奈末, 及伐干에 불과하다. 奈末은 신라 관등체계에서 11등급...

신라의 대일 저자세 외교의 근거와 비판 3

日本書紀 에는 스스로를 中國이라고 표현하는 부분까지 나온다. 그 의도는 오랜 옛날부터 자신들이 세상의 중심에 있다고 생각했던 이른바 中華思想을 일본의 천하관에 옮겨놓자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마치 일본이 당시 국제사회의 중심적 역할을 했던 것처럼 인식하게 된다. 당시의 실제 국제관계를 통째로 뒤바꾸어 놓은 셈이다. 이러한 사고방식은 주변 국가를 자신의 ...

신라의 대일 저자세 외교의 근거와 비판 2

  신라가 일본에 제공한 물품도 이러한 관계 개선 노력의 하나였다고 본다. 신라는 679년 10월부터 본격적으로 상당한 물량의 제품을 일본에 보내고 있으며, 이와는 별도로 천황․황후․태자에게도 귀금속과 刀를 증여하고 있다. 이 사실을 당과의 전쟁재발을 염두에 둔 신라가 일본의 천황과 그 가족, 고위 귀족들의 환심을 사기 위해 물량공세를 편 사실...

신라의 대일 저자세 외교의 근거와 비판 1

앞에서는 통일 전후의 신라가 일본에게 군사적 압박을 받았다고 보는 주장의 허구성을 증명하는데 주력했다. 이와 같이 일본의 군사적 압박이라는 것이 허구라 한다면, 이를 반영할 수밖에 없는 신라의 외교 정책도 달리 해석해야 할 것이다. 일본과 적대관계가 될 경우에라도 신라가 받아야 할 군사적 압박이 그리 크지 않았다면, 이는 외교정책에도 반영이 되지 않을 ...

일본의 對新羅 군사적 위협의 허구 8

3층에 설정된 吳越 같은 경우, 실제로 신라를 침략했거나 침략하려 했다고 볼 수가 없다. 일본과 중화를 제외하고는 황룡사 9층탑의 각 층에 설정된 대부분의 나라가 어디인지 비정하기도 어렵다. 이런 나라들의 침범까지 막으려고 세웠다는 게 황룡사 9층탑이다. 이러한 내용까지 나타나는 것으로 보아 만파식적 설화 등에 나타나는 ‘欲鎭倭兵’은 신라가 왜를 막아야...

일본의 對新羅 군사적 위협의 허구 7

위 두 기사는 불교적 윤색이 있지만, 어쩌면 일어날 수도 있는 최악의 상황에 대한 문무왕을 근심이 녹아 있다고 본다. 당과 일본이 신라를 치기 위해 동맹군을 형성할 지도 모른다는 점 때문에 문무왕에게 일본이란 존재는 불안감의 원천이었고 이게 만파식적 설화 등에 반영되어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여기에도 문제가 있다. 불교적 윤색이 있다는 점을 인정하면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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