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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왜란의 경험에서 무엇을 배울 것인가? 2

반대로 일본은 무치주의 국가로 상공업을 장려하고 외국무역에 역점을 두었다. 군비를 갖추기 위해서이다. 왜구의 노략질이 가장 돈을 손 쉽게 버는 방법이었다. 왜구는 노략질을 일삼지만 항상 실전경험을 할 수 있는 강점이 있었다. 거기다가 전국시대에 번주(藩主)들이 치열하게 싸웠으니 강군이 될 수밖에 없다. 일본에서 칼과 성(城)이 발달한 것도 그 때문이다....

선비의 개념 2

송대의 사대부 개념은 려말선초에 이르러 정착되었다. 사대부층은 고려 귀족세력과 대치하는 과정에서 주자학을 이론무기로 채택했다. 그리하여 그들이 주축이 되는 왕조교체를 통해 조선의 지배층이 되었다. 사대부는 본래 유교공부를 해 국가의 관료가 되는 것이 목적이었다. 그러므로 문관 중에 ‘사’는 하급관료, ‘대부’는 고급관료를 의미하게 되었다. 그러나 양반의...

선비의 개념

심희수(沈喜壽)와 기생 일타홍(一朶紅)

심희수는 영의정을 지낸 심연원(沈連源)의 동생 심봉원(沈逢源)의 손자다. 누가 봐도 혁혁한 양반가문의 후손이다. 그러나 일찍이 아버지를 여위고 방탕한 소년이 되었다. 그런데 하루는 권세 있는 재상집에서 잔치가 벌어졌다. 심희수는 음식과 술을 마구 먹고 마셔댔다. 끌어내려 해도 막무가내였다.이 때 춤을 추던 기생 일타홍이 가만히 그에게 접근해 함께 그에 ...

지금은 실버시대 8

한상권: 다시 한번 정리해 주시지요.이성무: 선비는 원래 “선배”(先輩)라는 말에서 나왔습니다. 도덕적 수양을 먼저 배운 사람이 라는 뜻이지요. 선비는 꼭 벼슬을 하지 않더라도 유교적 교양을 갖추고 있는 독서 인층(讀書人層)을 의미합니다. 유교적 교양을 갖춘 지도층이지요. 지도층이면 그 사 회를 이끌어 갈 책임이 있어야지요. 나라가 위기에 처하면 목숨도...

조선의 선비사상과 남명(南冥) 7

4. 맺음말남명은 훈신정치시대에서 사림정치시대로 넘어가는 과도기를 살다 간 인물이다. 그가 살았던 16세기는 사화기에 해당한다. 많은 사림들이 4차례 일어난 사화로 죽거나 귀양갔다. 이러한 세상에 선비들의 거취가 대단히 어려웠다. 당시에 선비들의 출처관이 문제된 것도 그 때문이다. 선비들은 힘을 키우기 위해 유향소, 향약, 향안 계 등 향촌자치기구를 만...

조선의 선비사상과 남명(南冥) 6

이와 반대로 남명은 퇴계의 이기론은 추상화되어“넓은 도회지의 큰 시장을 돌아다니면 금은이나 보배가 없는 것이 없으나 하루종일 거리 를 오르락내리락 그 값을 물어보아도 끝내 자기 집의 물건이 되지 못하는 것과 같다”고 했다. 실천이 중요한 것이지 이치를 꼬치꼬치 따진다고 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남명의 수양방법은 시살적(廝殺的) 존양성찰(尊養省察)이다...

조선의 선비사상과 남명(南冥) 5

이러한 남명의 사상은 그의 경의(敬義)사상에 잘 나타나 있다. 그는 선비라면 도덕적 수양을 철저히 해야 한다고 했다. 내경(內敬)이 그것이다. 그러나 경를 하는 과정에 부단히 사욕(私慾)이 마음을 침노할 수 있다는 것이다. 특이 귀(耳)와 눈(目)과 목구멍(口)과 코(鼻)를 통해 마음을 흔드는 경우가 많다. 그러므로 이러한 인간의 욕심을 시살(厮殺)해 ...

조선의 선비사상과 남명(南冥) 4

퇴계는 또한 사림의 세상을 만들려면 국왕에게만 의지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조광조가 중종만 믿었다가 기묘사화를 당했다는 것이다. 그러니 사림의 힘을 기르기 위해서는 향촌자치기구를 통해 향권을 장악하고 사림을 교육해 그 수를 늘여야 한다고 생각했다. 유향소, 사마소, 향약, 서원을 설치한 것도 그러한 의도에서였다. 유향소, 향규는 처음에 훈구파에 의해...

조선의 선비사상과 남명(南冥) 3

3. 선비정신과 남명퇴계와 남명은 같은 해(1501년)에 태어나 70 평생을 살다가 퇴계가 한해 먼저(1571) 죽었다. 그러니 같이 16세기를 살았고, 고민도 같았을 것이다. 16세기는 훈신정치시대로부터 사림정치시대로 바뀌는 과도기였다. 그 과정에서 사림들은 여러 차례 사화(士禍)를 겪어 죽거나 탄압을 받았다. 이러한 시국에 과연 출사를 할 것인가 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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