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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호유학의 흐름과 내포 6

조익(1579-1655)은 1611년(광해군 3)에 조광조(趙光祖)‧김굉필(金宏弼)‧정여창(鄭汝昌)‧이언적(李彦廸)등 4현(四賢)을 문묘에 배향할 것을 주장하다가 좌천되고, 김육(金堉)이 대동법(大同法)을 실시 하는데 기여한 유명한 학자관료요 교육이론가였다. 저서로는 곤지록 (困知錄)‧ 역상개략 (曆象槪略)‧ 중용주해 (中庸註解)‧ 대학주해 (大學註解)...

기호유학의 흐름과 내포 5

이간은 온양의 외암서원(巍巖書院)에 배향되었다. 호락시비는 오랫동안 계속되어 귀결을 보지 못했으나, 처음에는 호론이 우세하다가 뒤에는 낙론이 우세하게 되었다. 안동김씨 세도정치의 주역들이 낙론을 지지했기 때문이다. 이 호락시비는 결국 정치적으로 송시열의 북벌론(北伐論)을 지지하느냐, 북학론(北學論)을 지지하느냐는 이론적 근거가 되었다. 청나라를 오랑캐(...

기호유학의 흐름과 내포 4

외암 이간(1677-1727)은 수암 권상하의 제자 중 강문 8학사(江門八學士: 韓元震․李柬․尹鳳九․崔徵后․蔡之洪․李頤根․玄尙壁․成萬徵)의 한 사람으로서 그는 인성(人性)과 물성(物性)이 다같이 오상(五常)을 가진다는 인물성동론(人物性同論)을 주장하고 미발(未發)한 마음의 본체는 기질의 선악이 없으므로 본래선(本來善)이라는 미발심체본선론(未發心體本善論)...

기호유학의 흐름과 내포 3

남당 한원진(1682-1751)은 세종 때의 영의정 한상경(韓尙敬)의 후손으로 우암 송시열의 수제자인 수암 권상하의 제자이다. 그는 이이(李珥)의 기발이승일도설(氣發理乘一途說)을 바탕으로 인물성동이론 논쟁에서는 인성(人性)과 물성(物性)이 다르다는 인물성이론을 주장했다. 그의 심성설(心性說)은 우주만물의 생성구조에 토대를 두고 있다. 우주에는 양건(陽健...

기호유학의 흐름과 내포 2

더구나 서인학통은 인조반정(仁祖反正) 이후 정권을 주도하게 되었고, 퇴계의 남인학통은 연립정권의 형태로 이에 참여하게 되었다. 따라서 북인정권을 구성하던 기호의 화담학파와 영남의 남명학파는 무너지게 되었다.그리하여 학설 논쟁도 이 두 학파 사이에 벌어지게 되었으며 율곡학파 내에서도 경기도를 중심으로 하는 낙논(洛論)과 충청도를 중심으로 하는 호론(湖論)...

기호유학의 흐름과 내포

기호 유학은 화담계열(花潭系列)이 중심이었다. 화담(花潭) 서경덕(徐敬德)은 무인집안 출신으로, 제자를 받아들일 때 문호를 개방하여 양반뿐 아니라 양인‧천인에게까지 문하에 출입하게 했다. 이중 내포지방에 살던 인물로는 이지함(李之函)‧서기(徐起)‧홍가신(洪可臣) 등이 있다.이지함(1517~1578)은 한산이씨로 보령사람이며 묘소는 보령시 주포면 고정리에...

성리학(性理學)의 수용과 내포 2

이색은 불교는 본래 좋은 것이지만 승려들이 타락하여 피해가 심하니 불교적 윤리관을 유교적 윤리관으로 바꾸어야 한다는 온건한 개혁을 주장했다. 도첩제(度牒制)를 강화하고 성균관을 부흥시키려 한 것도 그 때문이었다. 그는 정몽주 이숭인 박상충 정도전 권근 등 많은 제자를 길러냈으나 이성계를 추종하는 정도전과 그를 따르는 기타 제자들의 대립으로 말년을 불우하...

성리학(性理學)의 수용과 내포 1

고려말에 내포의 지식인들은 성리학 수용에 앞장섰다. 그 중에서 성리학을 처음으로 연구 보급한 백이정(白頤正)의 묘소는 보령군 웅천면 평리 양각산(羊角山)에 있으며 그곳에 그를 모신 신안사(新安祠)와 그의 신도비(神道碑)가 있다.성리학을 수용하는데 정치적으로 앞장선 사람은 안향(安珦)이지만 원나라에 10년간 있으면서 성리학을 본격적으로 연구하고 돌아와 이...

내포의 자연환경

그러나 바다 가까운 곳에 학질과 염병이 많다. 산천이 비록 평평하고 넓으나 수려한 맛이 적고, 구릉(丘陵)과 원습(原濕)이 비록 아름답고 고우나 천석(泉石)의 기이한 경치는 모자라다. 그 중에서 보령(保寧)의 산천이 가장 아름답다. 고을 서편에 수군절도사영(水軍節度使營)이 있고 그 안에 영보정이 있다. 호수와 산의 경치가 아름답고 활짝 트여서 명승지라 ...

내포지방의 지성사

내포는 가야산을 중심으로 하는 넓은 개펄과 평야가 발달하여 경제적 여건이 좋고 서울과 가까우며 중국과 내통하여 일찍부터 선진지역으로서 지식인들이 많이 모여 살았다.그리하여 고려말의 성리학 수용에 앞장섰고 조선후기에 실학자들을 많이 배출했으며 천주교가 널리 유포되기도 했다. 또한 근대화 과정에서도 많은 인물을 배출했다.본고에서는 이러한 내포지방의 학문활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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