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산벌은 어디였을까? 2 └전쟁사

물론 여기서 의문을 표시하기도 한다. 한강 지역에서 사비로 진격하려면 상대적으로 백제 영역을 많이 통과해야 한다. 그러니 그 과정에서 병력 이동상황도 노출되고 중간에 받을 저항도 크지 않겠느냐는 것이다.

그렇지만 이런 발상은 전선(戰線)을 형성해서 싸우는 현대전에서나 떠올려 볼 법한 얘기다. 당시는 성()을 중심으로 방어하는 시대이다.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성 하나하나가 보유하고 있는 병력이 많을 리 없다.

그러니 이때의 신라군처럼 마음먹고 동원한 대군이 성을 우회해서 지나가는데, 성에 주둔한 병력이 이 앞을 가로막고 저항하겠다는 발상은 기본적으로 하기 어렵다. 기껏해야 소수의 병력이 출격하여 유격전 방식으로 괴롭히는 정도다.

하지만 이는 신라군을 귀찮게하는 정도이지 저지한다는 의미를 가지기는 어렵다. 신라군이 이런 정도의 저항이 두려워 북쪽에서 사비로 진군하는 길을 꺼려야 할 이유는 없었다.

그렇다면 신라군은 지형적인 난점이 적은 북쪽 루트를 선택했을 가능성이 더 크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만약 이 루트를 택했다면 지금의 공주 지역을 거쳐 논산 방면으로 들어오게 되며, 굳이 연산을 거칠 필요가 없어진다. 그렇다면 황산벌도 논산 지역일 가능성이 커지게 된다

.

전투가 벌어졌던 황산벌이 정확하게 어디인지 잘라 말할 수도 없고, 기록도 몇줄 남아 있지 않은 상황이어서 전투의 양상을 정밀하게 묘사하기는 어렵다. 그래도 현지를 둘러보니 기본적인 윤곽은 나온다.

일단 황산벌이 부여에서 그리 먼 지역이 아니다. 무엇보다 백제군이 멀리까지 마중 나가 신라군을 저지할 수 있는 입장이 못 되기 때문이다. 그렇게 보아야 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전근대에는 중간 중간 이동상황에 대한 보고가 들어온다 하더라도 거미줄처럼 얽혀 있는 길 하나를 골라 정확하게 만나기가 어렵다.

이른바 회전(會戰)이라는 개념도 그래서 나왔다. 오죽했으면 서로 전령을 보내 어느 지점에서 만나자고 약속을 했다. 그래 놓지 않으면, 엇갈리기 십상이었던 것이다. 물론 황산벌 전투에서 신라군이 굳이 당군과 합류하기 전에 중간에서 굳이 백제군을 만나 싸워주려 했을 리는 없다. 그러니 백제 측에서도 확실하게 신라군의 이동경로를 확인하고 길을 막기 위해서는 사비 부근으로 접근할 때까지 기다려야 했을 것이다.

 


덧글

  • 8비트소년 2014/12/16 08:55 # 삭제 답글

    제2훈련소가에 다 나오지 않나요? ㅎㅎ

    백~제의 옛터전에 계~백의 정기 맑~아 관~창의 어린 뼈가 지~하에 혼연하~니
  • 미군철수 2014/12/16 09:03 # 답글

    탄현 얘기는 대책을 논의할 때도 나오고 신라군이 지났다는 보고를 받을 때도 나오는데 이것을 부정하면 역사가 아니라 소설이 되어 버립니다.
    언급할 필요도 없는 가정이지만 신라가 남천정에서 탄현을 거치지 않고 곧장 내려왔고 당군이 황산벌 전투가 벌어진 다음날 군산에 상륙했다고 가정하면 더 많은 모순이 발생합니다.
    논산과 부여 30리 밖은 바로 코앞인데 9일에 전투가 끝난 신라군이 약속한 10일까지 부여 30리 밖에 도착하지 못한 이유가 뭘까요? 그동안 백제 패잔병은 강경으로 가서 배를 타고 웅진구로 이동하여 당군과 전투를 치르고 여기서 승리한 당군은 10일까지 부여 30리 밖에 도착합니다. 신라군은 나무늘보로 구성된 군대인가요?
  • 2023년 미군철수 2014/12/16 18:50 # 답글

    신라군이 나무늘보가 아니라면 이런 설명은 어떨까요?
    9일 전투가 끝난 신라군은 10일까지 PT체조를 하다가 가스실에 들어가 가쁜 숨을 고른 뒤 부여 30리 밖까지 낮은 포복으로 갔다...
  • 블레이드 2014/12/17 08:10 #

    하는 짓을 보니 영교에게 까인게 확실한가 보군. 엇그제 만났을 때 어째 표정이 안 좋더라. 신라가 일본에 저자세 외교했다고 주장하는 친구가 코드가 잘 맞을 것 같아 소개시켜주었는데... 하긴 영교 녀석 몇 대 얻어맞더니 철 들었나. 그래도 좀비에게 낚일 수준은 아니겠지. 이래서 학습효과가 중요하다니까.
  • 2023년 미군철수 2014/12/17 11:02 #

    지난 번에 블로그에 올리신 주장을 한 사람이군요.
    역학관계상 신라가 일본에 저자세 외교를 할 가능성은 충분히 있고 기록에도 그렇게 나온다면 그건 역사적 사실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다만 그분과도 임나사에 대해서는 의견이 갈릴 겁니다.
    한국에 임나사를 인정하는 학자가 있다는 얘기를 아직 들어보지 못했거든요.
    나중에 만나시거든 '임나경영설'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한번 물어봐 주세요.
    http://kallery.net/Q_strg/trustle/imna.png
  • 2023년 미군철수 2014/12/18 08:09 #

    임나 지도를 보면 아시겠지만 고령과 남원 사이에 빈 공간이 있습니다. 덕유산 가야산 그리고 지리산으로 둘러싸인 지역입니다. 이곳에서 새로운 고고학적 발견이 이루어질 가능성이 높아요. 그러면 전설 속의 왕국 반파의 실체가 드러나겠지요. 이 부분을 한번 파 보세요.
  • 미군철수 2014/12/16 23:29 # 답글

    2% 남은 귀중한 기록마저 걷어차 버리고 소설을 쓰는 일이...
  • 2023년 미군철수 2014/12/17 08:38 # 답글

    백제라는 왕조에 대해 애정을 갖고 계신 거 같은데 이런 식으로 기록마저 부정하며 소설을 쓰지 마시고 475년 이후 아산만에서 충주에 이르는 선까지 백제가 밀려난 것이 아니라는 주장을 하는 게 어떨까요?
    삼국사기에는 분명히 한성을 계속 점유하고 있었다고 기록하고 있는데 세상 사람들에게는 이런 인식이 심어져 있죠.
    http://goo.gl/flJ8Zm
  • ㄴㅇㄹ 2014/12/17 14:00 # 삭제 답글

    열심히 싸워라!
  • 2023년 미군철수 2014/12/20 21:54 # 답글

    식민사관과의 전쟁을 벌이고 계신 박사님께서 미군철수 반대논리에 숨어있는 타율성론과 반도적 속성론을 문제삼지 않는 것이 참으로 이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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