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사기 등, 현재 남아 있는 기록을 보면 신라군이 탄현을 넘어 사비로 진격한 것처럼 되어 있다. 탄현이 어디인지에 대해서도 논란이 있지만, 기본적으로 소백산맥의 어느 지점이라는 정도는 분명하다.
신라군이 소백산맥 어느 지점인 탄현을 넘어왔다면 산맥을 넘어 바로 맞닥뜨려야 하는 곳이 연산 지역이다. 여기를 통과시켜놓고 그 뒤에 있는 논산 지역에서 막으려 하지는 않았을 것이라는 추측이 가능하다.
그런데 여기서 한 가지 생각해 볼만한 점도 있다. 신라군이 굳이 탄현을 넘었다고 보아야 하느냐는 점이다. 많은 사람들이 별 생각없이 ‘신라군은 탄현을 넘어왔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이렇게 생각하는 근거는 의외로 간단하다.
당나라와 신라의 군사가 이미 백강과 탄현을 지났다는 말을 듣고 [왕은] 장군 계백(堦伯)을 보내 결사대 5천 명을 거느리고 황산(黃山)에 나아가 신라 군사와 싸우게 하였다.
라는 기록 때문이다. 그런데 이 내용은 좀 생각해보아야 할 측면이 있다. 특히 ‘당나라와 신라의 군사가 이미 백강과 탄현을 지났다’라는 부분을 주목해 보아야 한다. 바로 이것이 백제군이 백강을 막지 않아 나당연합군이 무저항으로 통과한 것처럼 왜곡시킨 기록이다.
이 사료에서 주려했던 메시지는 분명하다. 백제라는 나라에 망조가 들어 당연히 막아야 할 곳도 막지 못했던 수준이었다는 말을 하고 싶은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분명히 군대를 출동시켜 막으려 했던 백강 방면마저도 무방비로 뚫렸던 것처럼 써놓았던 것이다. 그렇다면 ‘탄현을 지났다’는 구절도 액면 그대로 믿어야 할 필요는 없다.
백강(白江)과 탄현(炭峴)은 우리 나라의 요충지여서 한 명의 군사와 한 자루의 창으로 막아도 1만 명이 당할 수 없을 것입니다.
라며 방어거점으로서의 탄현을 강조하는 것 자체가 그만큼 탄현이 방어하기에 좋은 요충지라는 애기가 된다. 그런데 이 점을 뒤집어 생각해보면 신라군의 입장에서는 지나가고 싶지 않은 지점이라는 뜻이다.
물론 반드시 이곳을 통과해야 하는 지점이라면 신라군 쪽에서 선택의 여지가 없겠다. 그러나 당시 그런 상황이라고 볼 수는 없다. 신라가 한강 지역을 수중에 넣고 있었고, 당군도 그 방면에서 맞이했다.
산맥이 남북방향으로 늘어서서 지역을 동·서로 갈라놓는 경향이 있는 한반도 지역의 지형상, 지금의 수도권에서 부여로 가는 길이 소백산맥 동쪽에서 부여방면으로 넘어가는 방향처럼 산맥이 가로막고 있는 건 아니다. 그러니 상대적으로 길도 좋고 선택할 수 있는 방향도 많다. 신라군이 굳이 이런 루트를 마다하고 대군을 끌고 험한 탄현을 넘는 모험을 했을 것 같지는 않다.






덧글
신라 동쪽에 거인이 살았다는 것같은 황당한 기록이 아니면 기록을 부정할 수 없습니다.
신라군이 탄현을 지났다는 기록도 부정할 근거가 없어요.
곧 이것이 진실이 됩니다.
http://kallery.net/Q_strg/trustle/imna.png
아래 동영상의 임나4현은 엉터리입니다.
일본은 왜 역사를 왜곡하나? / YTN 사이언스
http://youtu.be/YINs5DY5v3c