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산벌의 백제군은 백강 전투에 합류했었다! 1 └전쟁사

당군이 백강에 상륙하는 과정에서 벌어졌던 전투의 양상은 대충 앞서와 같이 그려진다. 그런데 백강의 전투는 완전히 따로 떨어져 벌어졌던 것이 아니었다. 황산벌 방면은 물론 그 뒤에 벌어졌던 전투와도 매우 복잡하게 얽혀 있는 전투였던 것이다.

이 점을 시사하는 기록이 있다.

 

네 번 크게 어울려 싸워[會戰] 모두 이겼으나 군사가 적고 힘도 꺾이어 드디어 패하고 계백도 죽었다. 이에 군사를 합하여 웅진강(熊津江) 입구를 막고 강변에 군사를 둔치게 하였다.

 

는 기록이다. 황산벌에 투입되었던 백제군 일부가 백강 쪽으로 이동해 합류했다는 뜻인 것이다.

물론 여기에 의문을 갖을 수도 있다. 황산벌의 위치는 지금의 논산 또는 연산 지역이라고 본다. 이 중 먼 연산지역에서 백강 하구인 군산까지는 최대 40Km가량 된다. 이동속도가 느린 보병을 기준으로 짧은 시간 안에 이동하기는 부담스러운 거리라는 뜻이 되겠다.

백제군이 황산벌에서 백강까지 이동하는데 얻을 수 있는 시간을 알아보려면 불가피하게 당시 양쪽에서 벌어졌던 전투의 시차를 계산해보아야 할 것 같다. 황산벌에서 전투가 벌어진 날은 79일이라고 되어 있다. 이 사실은 기록에 명확하게 나와 있어 시비 걸릴 일이 없다. 그러면 문제는 당군이 백강에 상륙한 날짜다. 여기에 대해서는 기록에 확실하게 써놓지 않아 약간의 혼선이 생길 수 있다. 또 이 사실이 황산벌에 투입되었던 백제군이 백강으로 돌려진 시점이 애매하게 표현되어 있는 사실과 맞물려 논란의 소지가 있다.

독자들께 어려운 한문을 늘어놓으며 설명하는 것 자체가 좋을 건 없지만, 이 경우에는 해석을 가지고 시비 거는 경우가 많아 어쩔 수 없을 것 같다. 위에 소개된 번역문의 원문은 아래와 같다.

 

遣將軍堦伯帥死士五千出黃山 與羅兵戰四合皆勝之 兵寡力屈竟敗 堦伯死之 於時 合兵禦熊津口 瀕江屯兵 定方出左涯 乘山而陣與之戰 我軍大敗

 


덧글

  • 미군철수 2014/11/30 09:31 # 답글

    <시간 순으로 재배치>
    6월 21일 소정방과 김법민은 각각 바닷길과 육로로 가서 7월 10일에 백제의 남쪽에서 만나자고 약속하였다.
    당군과 신라군은 각각 웅진구와 황산에서 백제군과 전투를 벌인 뒤 사비성 30리 밖에서 만났는데 당군은 약속한 기일보다 늦었다며 신라장군 김문영을 죽이려고 했다.
    그렇다면 당군은 10일에 도착해 있었고 신라군은 11일에 도착한 것이 된다.
    당(唐)과 신라의 연합군은 12일에 사비성을 향해 함께 진군했다고 되어 있다.
    황산을 지금의 논산으로 설정하면 사비와 매우 가까운 거리에서 황산전투가 벌어진 것이 된다.
    이 전투가 9일에 끝났다면 신라군이 11일에야 사비성 30리 밖에 도착할 이유가 없다.
    그렇다면 황산전투는 9일부터 10일까지 지속된 것이 아닐까?
    황산전투는 4차례나 백제군이 신라군을 물리쳤고 반굴과 관창의 돌진이 있은 후에야 신라가 승리할 수 있었다.
    이 모든 것이 하루에 벌어졌다고 보기가 어렵다.
    삼국사기 백제본기에는 황산전투를 기술한 이후에 '於是(이에)'라는 말로 웅진구전투를 붙여서 기술하고 있어 두 전투가 하루에 일어난 것처럼 보이는 게 사실이다.
    그러나 이 기술이 사건을 시간순으로 나열한 것이 아니라 사건 단위로 묶어 나열한 것일 수도 있다.
    삼국사기 신라본기에는 당(唐)과 백제의 전투를 기술한 뒤 바로 신라군이 당군 진영에 도착하는 사건을 붙여 놓았는데 실제로는 그 두 사건 사이에 이틀의 시간이 있었다.
    이처럼 사서의 기술이 정밀하지 않다는 점을 고려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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