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도(良圖)의 지략 3 └전쟁사

우선 자신의 병력을 이동시키는데 충분한 배를 확보해놓아야 한다는 점이다. 상당기간 마음먹고 준비했을 신라와 당에 비해, 침공 의도를 파악한 뒤 급하게 동원해야 했던 백제의 입장에서 충분한 배를 확보하기가 쉬웠을 것 같지는 않다. 또 확보된 배를 가지고 써야 할 곳도 있었다. 이 점은 황산벌 전투와도 연결되니 나중에 관련지어 설명해야 할 것 같다.

어쨌든 이런 난점을 안고 있던 백제가 굳이 이 방면에서 승부를 걸기 위하여 교두보를 확보하고 있던 당군에게 달려들어 엄청난 희생을 치렀을까에 대해서는 의문이 생기는 것이다. 백제군이 애초 계획을 짤 때 백강방면에서 어느 정도의 전과를 기대했는지 보여주는 기록은 현재 없다.

정황을 보아서 백제가 현실적으로 기대할 수 있는 부분은 격퇴라기보다 지연(遲延)’이었을 것이라는 추측 정도가 가능할 뿐이다. 개인적으로는 일단 군산 방면으로 병력을 투입한 상태에서 혹시의 가능성을 확인해보기 위하여 찔러본정도가 아닌가 한다.

그런 측면에서라면 약간이나마 성과가 있었다고 할 수 있다. 장흥지역보다는 조금이라도 먼 군산 방면으로 상륙지점을 바꾸게 했고, 상륙과정에서도 무저항으로 길을 내준 것은 아니었다. 정확하게 어느 만큼인지는 알 길이 없으나, 그래도 기록이 남을 만큼의 전투를 치르게 했다.

이 정도의 효과가 백강 입구에 상륙하는 당군에 대하여 거둔 전과(戰果)’라면 전과인 셈이다. 큰 성과라고는 할 수 없지만, 절대 열세인 병력에 여러 가지 난점을 안고 치른 전투 치고는 크게 잘못했다고 하기는 곤란할 것 같다.

 


덧글

  • 미군철수 2014/11/23 09:16 # 답글

    옹진구 전투 이후 당군은 곧장 사비성 30리까지 진출하죠. 완전 실패한 작전이었습니다. 반면 황산벌 전투는 신라군을 크게 지연시켜 신라와 당군 사이에 갈등이 생기게까지 했으니 상당히 성공하였다고 할 수 있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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