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 것 아닌 것 같은 버들 돗자리가 방어 부대의 공격 타이밍을 근본적으로 흔들어 놓는 작용을 한 셈이다. 이렇게 필살기를 준비해서 작전을 쉽게 성공시킨 공으로 양도는 김유신․김인문과 함께 당 고종이 직접 포상하는 3인 중 하나가 되었다. 그만큼 작전 성공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고 인정받은 셈이다.
이걸 계산하지 못한 게 백제군의 ‘실책’이라고 할 수는 없을 것 같다. 상륙하는 과정에서 당군을 공격하려던 백제의 계획은 일단 무산되었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여기서도 조금은 감안해야 할 측면이 있는 듯하다.
기록에는 ‘정방(定方)이 왼편 물가로 나와 산으로 올라가서 진을 치자 그들과 더불어 싸웠으나 우리 군사가 크게 패하였다’라고만 되어 있다. 여기 ‘우리(백제) 군사가 크게 패하였다’라는 말이 나와 백제군이 심각한 피해를 입었다고 생각하기도 하지만, 상황을 보아서는 백제가 그렇게 무모하게 당군에 달려들었는지 의문의 여지가 있다
.
사실 백제의 입장에서 당군의 백강 상륙을 저지하는 데에 ‘올인’할 필요는 없었다. 또 그렇게 하기에 어려움도 너무 컸다. 여기서 백강 방면의 방어전에 임하는 백제군의 애로사항을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상륙지점을 현장에서 변경할 수 있는 점은 공격측의 권리에 해당한다. 상륙지점 변경을 인식하게 된 백제군이 당군을 쫓아 반대쪽 군산 방면으로 이동하는 방법은 역시 배를 타고 강은 건너는 방법뿐이다. 도선장에 대부분의 병력을 배치해놓았다 하더라도 백제군에게는 해결해야 할 난제가 더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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