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정방의 함대는 북쪽에서 해안을 따라 내려오고 있었다. 처음 상륙지점으로 의식하고 있었던 곳은 백강(현재 금강) 입구 중 북쪽에서 가까우며 모래밭이라 상대적으로 상륙하기에도 좋은 곳이 지금의 장항지역이었다.
하지만 어떻게 파악했는지는 몰라도 소정방은 이곳에 백제군이 배치되어 있다는 사실을 간파했다. 그래서 급히 뱃머리를 돌려 변경한 상륙지점이 바로 지금의 군산 지역이다. 기록에는 강 왼쪽, 또는 동쪽이라는 식으로만 묘사되어 있다. 사실 이 자체만 가지고서는 누구를 기준으로 한 왼쪽인지 그래서 어디에 상륙을 했다는 것인지 알아보기가 쉽지 않다.
하지만 현지에 와보니 훤히 보인다. 북쪽에서 해안을 타고 내려오던 소정방의 입장에서 가까와 먼저 눈의 띄기도 하고, 상륙하기도 제법 좋은 지역이 강 북쪽인 지금의 장항지역이다. 그런데 여기 백제군이 배치되어 있었기 때문에 상륙지점을 반대편 기슭으로 바꾸었다면 당연히 지금의 군산지역이 된다. 왼쪽이라는 것은 내륙 쪽에서 본 방향이 되겠다.
진흙으로 이루어진 이곳의 개펄은 상륙에 애로사항으로 작용할 수 있었다. 백제군이 기대하고 있던 점이 바로 그것이었으나, 나당연합군은 이에 대한 대책을 세워가지고 왔다. 이 대책을 세운 주인공이 신라 장군인 양도(良圖)였다. 그는 진골출신으로 대아찬(大阿湌)의 관등을 가지고 있었다. 이후 고구려 원정 때에도 뱃길을 이용했던 수군 지휘관으로 알려져 있다.
그가 이 작전에 준비했던 것은 ‘버들로 엮은 돗자리’였다. 필살기치고는 별 게 아닌 것처럼 보인다. 그렇지만 이건 백제군의 방어전략을 뿌리부터 흔들어 놓은 도구였다.
양도가 준비한 버들 돗자리 덕분에 병사들이 진흙 속에 빠지는 걸 막을 수 있었던 것이다. 신속한 상륙이 가능해진 건 당연하다. 바로 이 시간 지연을 막아줄 수단 덕분에 상륙해서 교두보를 확보하는 타이밍이 훨씬 빨라지게 되는 것이다. 백제군의 계산이 어긋나게 된 것은 바로 이 타이밍 차이 때문이다.
100척의 선박을 이용하여 당나라군대와 같이 백강 입구에 상륙한 신라군은 배에 실어온 버들 돗자리를 깔아 주며 상륙부대의 앞길을 터주는 역할을 했다. 바로 상륙부대의 앞길을 개척해주는 ‘전투공병’ 역할을 한 것이다. 신라 측의 치밀한 준비로 인하여 상륙작전에 있어서의 중요한 약점 하나를 극복했던 셈이다.
백제군은 이 점을 계산에 넣지 못해 당나라군대가 상륙하여 산 위에 진을 치고 난 이후에야 반격해왔다. 이렇게 당나라군대가 이미 교두보를 확보해 버린 상태에서는 백제군이 압도적인 전력을 가진 당나라군대를 당해낼 수 없다. 백제는 상당한 희생만 치르고 퇴각해버렸다. 결과적으로 무모한 공격이 되어 버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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