뻘이 발목을 잡아줄 것이다. 그러나....2 └전쟁사

적어도 수 백 미터나 되는 거리를 몸도 제대로 가누지 못하며 달려가 숨이 턱에 찬 병사들이 제대로 싸울 수 없다. 싸우고 싶어도 몸이 많을 듣지 않는 상황이 벌어진다. 제대로 진영을 갖추기도 어렵다. 미리 자리 잡고 기다리는 방어부대에 비해 훨씬 불리한 상황에서 싸워야 하는 것이다. 백제는 이러한 상황을 기대하며 백강 방면의 전투에 임했을 것이다.

이 때에 군사를 놓아 공격하면 마치 조롱 속에 있는 닭을 죽이고 그물에 걸린 물고기를 잡는 것과 같습니다라는 부분은 바로 이러한 상황을 뜻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여기서는 타이밍이 중요한 변수가 된다. 타이밍을 잘 맞춰 상륙하는 중에 공격을 가할 수 있다면 소수의 병력으로도 막강한 적을 물리칠 수 있겠지만, 만약 이 타이밍을 놓치면 그걸로 기회를 잃게 된다.

그러면 실제 전투에서 타이밍 싸움은 어떻게 결판이 났을까? 이 점을 확인하기 위하여 우리는 곧바로 차를 타고 장항에서 군산으로 이동했다. 지금은 다리가 놓여 있어 차로 쉽게 건널 수 있지만, 그런 게 없었던 당시에는 배로 건너야 했다. 그런데 장항 백사장에서 1.8Km쯤 떨어진 지역에 도선장이 있다. 도선장의 위치는 예나 지금이나 잘 바뀌지 않는다고 한다. 이 도선장의 위치가 이후 벌어진 사태를 설명하는 데에 많은 단서가 된다.

군산 지역에 도착해보니 간척사업을 통하여 항구를 정비해놓은 점이 두드러지게 드러난다. 그래서 옛 모습을 찾기는 조금 어려워졌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완전히 없어지지는 않았다.

간척사업이 본격적으로 이루어지기 전까지만 해도 이곳에는 개펄이 펼쳐져 있었다고 한다. 바로 여기 있었던 개펄이 상륙부대의 발목을 잡아줄 장애물이었다. 사료(史料)에도 이 점을 시사하는 내용이 나온다.

 

장군 소정방과 김인문 등은 바다를 따라 伎伐浦로 들어갔는데 해안이 진흙이어서 빠져 갈 수 없으므로 이에 버들로 엮은 자리를 깔아 군사를 진군시켜 당나라군대와 신라군이 합동으로 백제를 쳐서 멸하였다. ( 三國史記 列傳金庾信 中)

 

라는 기록이다. 개펄로 이루어져 있었던 과거 이곳의 지형과 맞아 떨어지는 대목이다. 현지의 지형과 기록을 맞추어 보면 당시의 상황이 대충 그려진다.

    


덧글

  • 미군철수 2014/11/19 10:54 # 답글

    진창에 빠진 이야기는 군산이 아니라 장항입니다.
    사료에는 상륙할 때의 헛점을 노리자는 이야기가 없고 미처 기운을 차리기 전에 공격할 것인지, 장기전을 유도하여 지치게 한 다음 공격할 것인지가 논의되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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