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종의 독살설 └ 성고선생의 역사이야기

경종의 급작스런 사망과 영조의 즉위로 치열하던 노소 당쟁은 점차 노론의 우세로 귀결되고 있었다. 이와 함께 영조와 노론 정권에 대한 남인과 소론의 반감은 정국을 일촉즉발의 상황으로 몰고 있었다. 1728(영조4) 3월에 발생한 무신란은 영조와 노론에 대한 반감을 폭력적인 수단으로 표출한 일대 사건이었다. 반란의 주체는 소론의 급진 세력과 일부 남인 세력이었다. 반란의 목적은 영조를 제거하고 노론 정권을 타도한 다음 소론 남인의 연합 정권을 구성하는 데 있었다.

자신에게 특별한 실정이 없다고 자부하던 영조는 경악했다. 더욱이 신임옥사의 와중에서 목숨까지 위협받으며 정치의 비정한 현실이 어떠한가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던 그였기에 무신란의 충격은 더욱 컸다. 그러나 무신란은 청천벽력의 현상이 아니었다. 반란에는 나름대로 이유가 있었다. 다름 아닌 영조 자신이 비정상적인 절차를 통해 왕위에 올랐다는 사실이었다.

숙종이 경종을 버릴 때, 노론은 영조를 선택해 주었다. 신하가 임금을 선택하는 이른바 택군이라는 기현상이 빚어진 것이다. 왕조 국가에서는 용인될 수 없는 비정상적인 과정을 통해 영조는 왕이 되었다. 따라서 반란의 주체들에게 영조는 합법적인 군왕이 아니었다. 타도되어 마땅한 불법적인 군주에 지나지 않았다. 바로 여기에 반란의 소지와 근원이 자리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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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조와 노론에 대한 반감에 더하여 반란의 촉매가 된 것은 경종의 의문스런 죽음이었다. 경종은 1724820일 게장과 생감을 먹고 복통과 설사를 거듭하다, 5일 뒤인 825일에 사망했다. 이와 관련하여 세간에서는 경종이 동궁(영조)에서 들여 보낸 게장을 먹고 죽었는데, 게장 속에는 독이 들어 있었다는 말이 암암리에 유포되고 있었다.

심지어 1725(영조1) 정월에는 영조의 면전에서 경종의 독살설을 발설하다 죽음을 당한 경우가 있었고, 1727(영조3)에는 경종이 비명에 죽었다는 괘서가 등장하여 진상 조사가 벌어지기도 했다.

그러면 경종은 과연 독살되었는가? 누구도 이에 대해 확답을 내릴수는 없다. 그러나 경종의 죽음은 의문스런 역사의 한 장면임에 분명하다. 독살설이 사실이든 조작이든 간에 경종의 죽음에 관한 의혹은 구전이나 괘서, 흉서의 형태로 광범위하게 살포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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격분한 소론과 남인의 과격파들은 영조를 군주로 인정할 수 없었다. 그리고 의문의 독살설은 경종에 대한 흠모의 정을 고조시켜 반란 세력의 결속은 물론 민심을 규합하는 데 주효했다. 그들은 영조는 숙종의 아들이 아님, 경종을 몰래 시해했다는 유언비어를 통해 여론을 더욱 선동했다. 정통성이 없는 군주 영조를 타도하여 경종의 원수를 갚는다는 반란의 명분은 그렇게 만들어졌다. 결국 무신란은 권력에 대한 도전인 동시에 경종을 위한 복수 운동이었던 것이다.

 


덧글

  • 라라 2014/11/18 18:34 # 답글

    정황 증거론 최소 영조가 묵인하거나 개입했으리라 보이느느 면이 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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