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벌포 지역의 구조와 장항 2 └전쟁사

소정방의 함대는 북쪽에서 해안선을 따라 남쪽으로 내려오고 있었다. 이렇게 백강 하구쪽으로 접근하게 되면 장항지역이 먼저 눈에 들어오게 되어 있는 것이다. 물론 단순히 먼저 눈에 보인다고 이곳을 우선적인 상륙지점을 정할 수밖에 없었다는 뜻은 아니다. 이외에도 여기가 우선이었을만한 이유는 또 있다.

이 점을 확인하기 위하여 당시 기벌포라고 불렸던 지금의 장항부터 찾았다. 이곳 안내판에 장암리라는 지명의 유래를 설명하면서 이곳이 기벌포였다는 설명이 붙어 있다.

네비게이터의 소개로는 장항백사장이라고 되어 있는데, 동해안의 깨끗한 백사장 이미지는 아니다.

그래도 모래를 딛고 있다는 느낌을 확실하게 든다. 옆에 계시던 김우선 선생께서는 이 모래는 위의 사구에서 깎여져 쌓인 것이라, 예전에는 뻘이 더 길었을 것이라는 말씀을 하신다. 확인하기 위해 바다쪽으로 움직여보니 역시 바다쪽으로 갈수록 뻘의 성격이 더 강하게 나타난다.




덧글

  • 미군철수 2014/11/07 12:23 # 답글

    장항에 상륙해서 사비성을 공격하려면 금강을 건너야 하기 때문에 백제가 군산 쪽의 방비에 치중했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당군이 이런 헛점을 노렸다고 볼 수도 있죠.
  • 零丁洋 2014/11/08 00:34 # 답글

    과거 금강 하구의 수운은 2대 포구 3대 장시라는 강경을 중심으로 이루어진 것으로 알고 있읍니다. 아직도 남은 젓갈시장에서 보듯 서해의 해산물이 강경에 모여 내륙으로 옮겨졌고 호남의 대동미도 이곳에 모여 서울로 갔다고 들었습니다. 간만의 차가 큰 서해안은 근대 이전에는 항구가 될만한 좋은 장소가 별로 없어 대동강의 진남포를 보듯 대부분 강폭도 수심도 충분하고 수심의 변화도 적은 하구에서 일정 부분 들어온 곳에 항구가 주로 있었던 것 같습니다.
  • 미군철수 2014/11/08 05:46 # 답글

    강경 논산은 임나의 하치리로 생각됩니다. 웅진도 원래 하치리에 소속되었었죠. 금강 하류가 하치리라면 상치리는 금강 상류인 대전일 가능성이 높아요. 모두 512년에 왜로부터 할양받죠. 백제가 망할 때까지 150여년 밖에 되지 않습니다. 백제의 지방 지배력이 약했던 원인이 여기에 있지않나 생각됩니다.
댓글 입력 영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