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응벽의 활약 └ 성고선생의 역사이야기

응벽(應璧)의 자는 명숙(明叔)이다. 1562(명종 17)에 태어났다. 어려서부터 가업을 이어 궁마(弓馬)를 익히고 겸하여 문사(文詞)를 전공해 여러 차례 초시(初試)에 합격했다. 임진왜란 때 형 변응정은 해남 임소에 있고, 아우 응규(應奎)는 만포진(滿浦鎭) 임소에 있었는데, 그가 모친을 모시고 관서(關西)에서 피난했다. 1600(선조 33) 4월에 실시한 문과 전시에서 외민책(畏民策)으로 병과(丙科)에 급제해 승정원 가주서가 되었다.

선조가 4도도체찰사 이항복(李恒福)를 별전(別殿)에서 인견할 때 그가 승지 민중남(閔中男)과 함께 입시했다. 해원부원군(海原府院君) 윤두수(尹斗壽) · 영돈령 이원익(李元翼) · 영의정 이항복 · 좌의정 이헌국(李憲國) · 우의정 김명원(金命元) · 이조판서 한응인(韓應寅) · 좌찬성 심희수(沈喜壽) · 병조판서 신집(申石+) · 호조판서 이정구(李廷龜) · 병조참판 한준겸(韓浚謙) · 동부승지 윤훈(尹暈) 등도 참여했다. 다음 해 주서(注書)로 승진했고, 나가서 경성판관이 되었으며, 1605(선조 38)에 다시 들어와 호조좌랑으로서 춘추관 기사관을 겸임해 명종실록을 편찬했다. 그러다가 다시 외직으로 나가 황해도사가 되었는데, 첩을 거느렸다는 죄로 양재역찰방으로 좌천되었다. 그 후 함경도사, 길주목사를 지냈고, 다시 들어와 대간을 거쳐 벼슬이 동부승지, 첨지중추부사에 이르렀다.

일찍이 서장관으로 연경(燕京)에 갔을 때 예부상서 변모(邊某)(應璧))의 선조는 심양후(瀋陽侯)이니, 구강태수(九江太守) 변양(邊讓)의 후손이다라고 해 태수묘(太守廟)를 알현한 후 귀국해 호를 구강(九江 )이라 했다. 1627(인조 5)에 성절사로 동지사를 겸해 장차 출발하려 하는데, 설촌(雪村) 이흘(李忔)

 

구강재사(九江才士)를 누가 능히 당하랴.(九江才士孰能當)

기개(氣槪)와 풍류(風流)는 일찍이 과장(科場)에 떨쳤다.(氣槪風流早擅場)

절묘한 재주는 일찍 유여각(游舁殼)처럼 들리고,(妙藝曾聞游舁殼)

맑은 문장은 정히 분우상(賁虞裳)과 합당하네.(淸文端合賁虞裳)

병법을 장군 막하에 잠시 시험했고,(龍蹈暫試靑油下)

용병(用兵)은 멀리 만리 변방에 자원했네.(虎竹遙分紫塞傍)

보국(報國)에 가히 마음이 함께 붉었고,(報國可燐心共赤)

우시(憂時)에 그 어찌 머리가 푸르겠나?(憂時其奈髮垂蒼)

장부(丈夫) 사업은 파함이 없는데,(丈夫事業無窮日)

역사의 훈명(勳名)은 혜아릴 수 없도다.(竹帛勳名未可量)

오랑캐를 평정해 번방(藩邦)의 수치를 씻고,(夷襄庶雪藩邦恥)

천자의 진노에 하()나라 번영을 기약하네.(震疊方期漢道昌)

대대로 장수가문 참으로 씨가 있고,(家世將門眞有種)

만년(晩年)의 유석(儒席)에는 문득 빛이 나도다”(暮年儒席便生光)

 

이라는 14()의 시를 지어 송별했다. 배가 등주(登州) 광록도(廣鹿島)에 이르러 큰 바람을 만나 서장관 윤창립(尹昌立)이 탄 배가 표류했다. 그는 급히 장계를 올려 명 희종(熹宗)이 죽고, 의종(毅宗)이 즉위한 사실을 보고했다. 1628(인조 6) 5월에 복명하니, 선조가 서장관의 표류 사실을 묻고, 모문용(毛文龍)이 오랫 동안 우리 나라에 머무르고 있는데, 명나라에서 의심하지 않더냐고 물었다. 그는 동지(冬至)의 행례(行禮)시에 다만 이해(利害)만 묻고 별로 의아해 하는 일은 없었다다고 대답했다. 선조가 또 묻기를 새 천자가 거룩하고 밝으시다고 하는데, 명나라의 사정이 전과 다름이 없느냐?” 하자, “사람들이 성명(聖明)하다고 하나 옥하관(玉河關)에서의 수색(搜索)은 전보다 갑절이나 심합니다라고 대답했다. 선조가 또 묻기를 명나라에서 장차 오랑캐를 토벌하고자 하던가, 다만 스스로 지키고자 하던가, 아니면 화의(和議)하고자 하던가?”라고 묻자, “다만 스스로 지킬 계획이며, 오랑캐를 토벌할 계획을 잊지 않았으며, 화의도 또한 듣지 못했습니다라고 대답했다.

만년에 이르러 집에 기오헌(寄傲軒)이라는 현판을 달고 이곳에 소요(逍遙)하며 스스로 즐기다가 죽었다. 묘는 양주(楊州) 미금면(渼金面) 마산(馬山)의 선영 아래에 있다. 부인은 신향(愼向)의 딸 거창신씨다. 남편과 함께 묻혔다. 아들은 다섯을 두었는데, 충집(忠執) · 충렬(忠烈) · 충길(忠吉) · 충신(忠信: 무과) · 충익(忠翊: 진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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