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차 왕자의 난과 방원 2 └ 성고선생의 역사이야기

이 때 이무(李茂)는 평소 중립을 지킬 계획을 세웠으나 민무질을 따라가 은밀히 남은(南誾)등의 모의를 방원에게 고했다. 이무는 민무질의 가까운 친척이었다. 박포(朴包)도 양 사이를 왕래하면서 저들의 동정을 살폈다.

방원은 민무구를 시켜 이숙번에게 무기를 갖추고 자기집 가까운데 있는 신극례(辛克禮)의 집으로 오라고 했다. 그리고 대궐 서랑(西廊)으로 들어가 숙직(宿直)하였는데 말은 김소근을 시켜 그 뒤편에 매어 두었다.

그 때 방번이 대궐로 들어왔다. 방원이 그를 불렀으나 머리를 긁적거리면서 머뭇거리다가 대답도 없이 들어갔다.

초저녁이 되자 어떤 사람이 대궐에서 나와 말하기를

임금의 병이 위독하여 피병(避病)하려 하니 왕자들은 속히 대궐로 들어오되 종자(從者)는 모두 들어오지 마라

고 했다. 이에 이화심종이제가 먼저 들어가 뜰에 서 있었고 방원방간방의 등이 잠시 문안에서 은밀히 말을 주고받았다. 본래는 밤이면 궁중에 등불을 켜게 마련인데 이때에는 등불이 켜져 있지 않아 더욱 의심스러웠다. 이화이제심종은 대궐로 먼저 들어갔으나 방원은 배가 아프다면서 변소에 들어가 앉아 한참 생각에 잠겼다. 방의방간 등이 두 번이나 달려와 방원을 부르니, 방원은

형들은 무엇 때문에 그렇게 큰 소리로 부릅니까?”

하고 일어서서 소매를 탁 치면서

사세가 어쩔 수 없이 되었다

고 하고 즉시 말을 달려 궁성 서문으로 나아갔다. 방원이 마천목(馬天牧)을 시켜 방번에게

나와서 나를 따르라. 결국은 저들이 또한 너도 온전히 살려 두지 않을 것이다

라고 전하라고 했다.

방번이 대궐 방에 누어 있다가 마천목을 보고 일어나 앉아서 그의 말을 들은 다음 다시 드러누었다. 방번의 종들은 모두 무회배들이어서 활쏘기와 말타기만을 일삼았는데 그들도 망령되이 세자의 자리를 빼앗으려고 도모한지 오래였다. 그들은 방번에게 말하기를

우리들이 이미 중궁(中宮)을 통하여 공()을 방석의 자리를 대신하게 만들어 놓았습니다. 교명(교명)이 곧 내릴 것이니 나가지 말고 기다리라

고 했기 때문에 방번이 믿고 나아가지 않았으나 외인(外人)들이 비웃었다. 방원이 그가 서로 용납하지 않을 줄 알고 일부러 불렀으나 따르지 않았다. 방원이 본집이 있는 동구(洞口)에 도착하여 말을 멈추고 이숙번을 부르니 이숙번이 장사 두 사람을 데리고 나왔다. 방의 이백경방간 부자도 말을 얻어 탔으며, 이거이(李居易)조영무(趙英武)신극례(辛克禮)서익(徐益)문빈(文彬)심귀령(沈龜齡)등이 있었는데 모두 방원에게 귀의한 사람들이었다. 이 때에 이르러 민무구(閔無咎)민무질(閔無疾)도 모였는데 기병(騎兵)은 겨우 10인이고 보병(步兵)은 겨우 9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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