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차 왕자의 난과 방원 └ 성고선생의 역사이야기

방원이 전라도 절제사가 되면서 동북면 가별치(加別赤) 500호를 방번에게 이관했다. 그런데도 방번은 사양하지도 않았고 태조는 그 사실을 알면서도 또한 돌려주라고도 하지 않았다. 태조는 오히려

외간의 의논을 너희들은 몰라서는 안 된다. 의당 여러 형제들을 깨우쳐 삼가도록 해야 한다

고 경계했다. 정도전남은심효생이제(李濟)이근(李懃)장지화(張志和)이직(李稷)등 강비 측근들이 방원을 비롯한 한비 소생을 옥조이고 있다는 뜻이다.

1398(태조 7) 4월 이들은 방석이제박위(朴葳)노석주(盧石柱)변중량(卞仲良)등으로 하여금 태조의 병이 위독하다고 하여 제왕자들을 불러들여 안에서 내노(內奴)와 갑사(甲士)로 공격하게 하고, 정도전남은 등은 밖에서 호응하도록 약속했다 한다.

방원은 은밀히 지안산부사(知安山府事) 이숙번(李叔蕃)에게

간사한 당여들은 평상시에는 진실로 의심할 것이 없다. 그러나 임금이 편찮은 것을 알면 반드시 변을 일으키는 것이다. 내가 그대를 부르거든 속히 달려와야 한다

고 해두었다. 이때 민문구(閔無咎)가 방원의 명에 의해 이숙번을 불러왔다.

한편 방원방의(芳毅)방간(芳幹)심종(沈琮)이백경(李伯卿)이화(李和)이제(李濟) 등이 경복궁(景福宮) 서랑(西廊)에 있었다. 그리고 오후 3-4시 경에 민무질(閔無疾)이 방원의 집으로가 누나인 방원의 부인과 한참 동안 이야기했다.

부인이 종 김소근(金小斤)을 불러 내가 별안간 배가 아프니 방원을 불러오라 했다. 방원이 돌아와서 부인과 민무질 셋이서 은밀한 얘기를 나누고 대궐로 돌아가려 했다. 이에 부인이 옷깃을 잡고 말렸다. 방원은

어찌 죽음을 두려워하여 나아가지 않을 수 있겠는가. 그리고 여러 형제들도 모두 금중(禁中)에 있으니 알리지 않을 수 없다. 만일 변란이 있게 되면 내가 나와서 군대를 출동해 거사하여 나라 사람들의 마음을 보살피겠다

고 하면서 옷깃을 뿌리치고 나갔다. 부인은 쫒아나와

부디 조심하시오. 날이 이미 저물었습니다

했다. 이때 여러 왕자들의 사병을 혁파하라고 명한 지 10여일이나 되었는데 오직 방번의 사병만 그대로 있었다. 방원의 사병을 파할 때 군기(軍器)를 모두 불살라 버렸는데 부인이 은밀히 군기를 준비하여 변란에 대응할 계획을 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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