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안열의 후예,국방대책을 내놓다 └ 성고선생의 역사이야기

그리고 1609(광해군 1) 여름에는 다음과 같은 방어책(防禦策)을 건의했다. 

지금 노적(老賊) · 홀적(忽賊) · 왜적(倭賊) 3적이 있는데, 홀적은 장수 24인에 병사 각 500인이 있었으나, 문암(門巖)의 전투에서 사상자가 6.000이었으니, 지금 만 명이 되지 못 하고, 노적은 누차 홀성(忽城)에 다달아 헛되이 공갈만 칠 뿐, 능히 진격하지 못하고 화전 (和戰)을 허락하고 있으니, 그 병력을 가히 알 수 있습니다. 또 중조(中朝)의 관방(關防)이 서로 대치하고 있으니, 2적은 감히 가벼히 움직이지 못할 것입니다.

그러나 왜적은 병사를 혜아리건대 50만에 이르는데, 사신을 보내어 길을 빌려달라 하니, 속임수를 또한 혜아리기 어렵습니다. 우리나라는 병사가 적어 힘으로 제어하기 어려우니, 마땅히 형세로서 방비해야 할 것입니다. 서북이 험액(險阨)하니, 복병(伏兵)을 설치해 기계 (奇計)를 내는데 이로우니, 포화(砲火)를 갖추어 제어해야 하며, 동남은 평연(平衍)해 성을 쌓고 평야를 깨끗이 치우는데 이로울 것이니, 주사(舟師)를 엄격히 훈련시켜 방어해야 할 것입니다. 모름지기 약속을 분명히 하고 사졸들을 가다듬어, 편안함으로 수고로움을 기다 리고, 장점으로 단점을 쳐서, 그 군사가 늙고 사기(士氣)가 게으르게 될 것 같으면 적병이 가히 굴복할 것입니다.

또 반드시 장수를 선발하고 병사를 양성해야 하는데, 장재(將材)에 셋이 있으니, 지혜와 용맹과 힘이라. 3(三才)가 한 마음이 되면 공을 마침내 보전할 것입니다. 초려(草廬)를 세 번 돌아봄에 제갈량(諸葛亮)이 나라를 위해 노고를 다 했고, 형제의 의를 맺어 관우(關 羽) · 장비(張飛)가 힘을 다 했으니, 3재의 충성을 다함은 또한 인주의 부린 바입니다. 병 명(兵名)에 셋이 있으니, 왕자(王者)의 병()은 의()로써 불인(不仁)을 치고 천벌을 공경 히 행하기 때문에 무적이요, 패자(覇者)의 병은 곧음으로써 굽은 것을 쳐서 어려운 것을 널리 구제하기 때문에 반드시 승리하고, 능자(能者)의 병()은 옳은 것은 상을 주고, 잘못 한 것은 벌을 주어 시기를 보아 움직이기 때문에 반드시 강합니다. 능자의 병이 왕자 · 패 자의 병을 오히려 제압하니, 하물며 무능자이겠습니까? 지금 장수가 그 재주가 없고, 병사 가 전투를 알지 못해 수륙의 방어에 모두 획일함이 없으니, 마땅히 장재를 가리고 규율을 정하면 반드시 먼저 이기고 뒤에 싸우게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신의가 없으면 일심 (一心)의 병사가 반드시 없어질 것이며, 방비가 없으면 나라에 믿을 바가 없어질 것입니다. 오직 전하는 반드시 신의를 중히 하소서!“

 라고 해 장재를 가리고, 규율을 정하되 인주의 신의가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얼마 후 가의대부(嘉義大夫)로 승진, 훈련대장에 제수되고, 한성부윤, 도총부 부총관, 동지중추부사, 유도대장(留都大將), 특진관, 군기시 제조 등의 관직을 역임했으며, 1613(광해군 5)에 자헌대부(資憲大夫)로 승진, 한성부 판윤, 지중추부사, 지훈련원사 겸도총관 등의 관직을 역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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