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안열의 후예,조선에서 벼슬 살다 13 └ 성고선생의 역사이야기

그는 43년간 벼슬하는 동안 청렴결백했고, 사재를 모으지 않았으며, 군사를 거느릴 때는 신상필벌(信賞必罰), 관맹득중(寬猛得中)했다. 평소에 특별히 좋아하는 것도 없었고, 글씨나 바둑 · 거문고 · · 연꽃 · 국화 등 6 가지만 좋아했다. 글씨는 고금(古今)을 증거하고, 바둑은 기축(機軸)을 보는 것이요, 거문고는 소리를 조화하고, 매는 영기(英氣)가 있으며, 연꽃은 성품을 정화시키고, 국화는 만절(晩節)을 지키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는 천문 · 지리 · 수학 · 산학 · 의학에 정통하지 않은 것이 없고, 관서(關西)지방의 변경 10 여군을 순찰할 때 산천 · 지리 · 험이(險易)를 한 번 보고 지도를 그리면 강 하나, 들 하나 틀리지 않았으며, 병영의 군부(軍簿)도 한 번 펼쳐 보면 거기에 기재되어 있는 사람을 한 사람도 빼지 않고 다 외웠다고 한다. 1584(선조 17)에 그가 천상(天象)을 보고, 태을(太乙)을 추산해 보고, 집 사람들에게 10년이 지나기 전에 나라가 크게 병사(兵事) 때문에 고생할 것이라고 예언했다. 그랬더니 과연 1592(선조 25)에 임진왜란이 일어났다. 특진관으로 있을 때 상소해 신이 일찍이 왜적과 싸워 보니 그들은 능히 목숨을 가벼히 여기는데, 하물며 조왜(朝倭)3로의 형세를 숙지하고 있음에랴. 대마도(對馬島)는 다른 날의 근심이 될 우려가 있으니 가히 말하지 못할 것이 있으나 신은 (죽은 뒤라) 보지 못할 것이다하고는 사촌 동생 응정(應井)을 천거했다. 1592(선조 25) 4월에 왜적이 크게 처 들어오자 선조가 신립(申砬)을 보내어 막고자 했다. 선조가 신립에게 적이 어떻겠느냐고 물었더니, 신립이 가볍게 여겼다. 이에 선조가 변협이 매번 말하기를 왜가 가장 어려운 적이라고 했는데, 경은 어찌 그리 쉽게 말하는가라고 했다고 한다. 신립이 나간 뒤에 선조가 변협은 진실로 양장(良將)이라. 내가 항상 잊지 않는다. 만약 이 사람이 있었더라면 내가 어찌 왜적을 걱정하겠느냐고 했다고 한다. 변협이 죽은 지 3년 만에 신립이 패사(敗死)하고, 응정(應井)이 계책을 올렸으나 채택되지 않아 응정마저 전사했다. 시호는 忠壯公이다.

부인은 증참판 최유선(崔惟善)의 딸 화순(和順)최씨다. 1527(중종 22)정월 25일에 태어나 1594(선조 27) 617일에 죽었다. 향년 68. 남편과 함께 묻혔다. 외아들 응성(應星)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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