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안열의 후예,조선에서 벼슬 살다 10 └ 성고선생의 역사이야기

()2(士信 · 士倫) 5녀를 두었다. 사신(士信)은 음직으로 경안(慶安)찰방을 지냈고, 부인은 감찰 김광후(金光厚)의 딸인 청풍김씨다. 사륜(士倫)은 자가 명보(明甫)1504(연산 10) 27일에 태어났다. 무과에 급제해 훈련원 첨정, 종성(鍾城)판관, 덕천(德川)군수를 지냈고, 죽은 뒤에 형조판서에 증직되었다. 부인은 셋이다. 첫째부인은 현령 홍의손(洪義孫)의 딸인 남양홍씨요, 둘째부인은 경력 이적(李適)의 딸인 양성(陽城)이씨요, 셋째부인은 이형양(李亨良)의 딸인 공주이씨다. 공주이씨는 남편과 같이 묻혔는데, 1997년에 양평에서 강원도 홍천군 북방면 전치곡리(田峙谷里) 21번지로 이장했다.

그런데 상회(尙會)의 참판공파(叅判公派)에서는 많은 인물을 배출했다. 상회의 증손 계윤(季胤), 계윤의 3자 협()과 그의 아들 응성(應星), ()의 동생 열()과 그의 아들 응정(應井) · 응벽(應璧) · 응규(應奎), 손자 충범(忠範) 등이 그들이다.

변협(邊恊)의 가계는 安烈--尙會--孝恭-季胤--應星

-應井

| 應璧

| 應奎로 연결된다.

계윤(季胤)4(· · · ) 2(鄭昌斌+李德厚에게 시집갔다)를 두었는데, ()은 셋째 아들이요, ()은 넷째 아들이다. 계윤(季胤)은 음사(蔭仕)로 면천군수, 중추부 경력을 지냈는데, 천성이 근후(謹厚), 염개(廉介)했다. 1565(명종 20) 114일에 죽었다. 부인은 용성군(龍城君) 최자반(崔子泮)의 딸 수원최씨다. 1572323일에 죽었다. 묘는 격장(隔葬)으로 쌍분이다. 장자 개()는 연기현령이었고, 차자 제()는 진사였으며, ()은 포도대장, 공조판서, 증영의정, 원흥부원군(原興府院君), 양정공(襄靖公)이었고, ()은 공조좌랑, 증공조참판이었다. ()의 아들 응두(應斗)는 무과에 급제해 첨지중추부사를 지냈고, ()의 아들 응각(應角)은 종성부사를 지냈으며, ()의 아들 응성(應星)은 훈련 · 포도대장, 병조참판, 한성판윤, 연천군(淵川君), 양혜공(襄惠公)이었다. 또한 열()의 아들 응정(應井)은 전라감사, 증병조판서, 충장공(忠壯公)이었고, 응벽(應璧)은 문과에 급제해 승지를 지냈으며, 응규(應奎)는 무과에 급제해 병사를 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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