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안열의 후예,조선에서 벼슬 살다 9 └ 성고선생의 역사이야기

1504(연산군 10) 4월에는 변수가 연산군의 어머니 윤씨를 폐비하는데 가담했다고 장 70에 처했다. 그러다가 1506(중종 1) 9월에 중종반정이 일어나자 그는 정란공신(靖難功臣) 2등에 녹훈되어, 11월에 황후책봉을 하례드리는 진하사(進賀使)로서 명나라에 다녀왔다. 다녀와서 1513(중종 8) 6월에 충청도수사가 되었고, 8월에는 원천군(原川君)에 봉해지고 봉조하(奉朝賀)가 되었다. 이와 같이 변수는 무신으로서 승지를 지낸 단초를 열었다. 1546(명종 1) 9월에 영경영사 홍언필(洪彦弼)

 

성종께서 변수(邊脩) · 김세적(金世勣)에게 일시에 승지를 제배하신 것도 장재(將材)를 미리 대기시켜 두려는 뜻이었습니다. 옛 말에 문무를 함께 쓰는 것은 장구책의 하나라고 했습니 다. 지금 육조와 승정원에 무신도 함께 주의(注擬)하게 해 격려시키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그리고 오늘날 무신은 연소한 자만 귀하게 여기고 노쇠한 자는 버리다시피 하고 있는데, 옛날 한()나라의 조충국(趙充國)과 진() 나라의 왕준(王濬) 같은 사람은 다 노년기의 사 람이었습니다

 

라고 해 무신을 승지로 쓸 것을 주장했다. 성종 조 이후의 문무교차(文武交差) 논의의 일환이다. 1524(중종 19) 710일에 죽었다. 그해 99일에 양근(陽根) 동종면(東終面) 갈산리(葛山里) 임좌(壬坐)의 언덕에 장사지냈다.(지금은 1997년에 강원도 홍천군 북방면 전치곡(田峙谷) 21번지로 이장했다.) 죽은 뒤 병조판서에 증직되었다. 부인은 군수 김양신(金良臣)의 딸인 연안김씨다. 1451(문종 1)에 태어나 1532(중종 27) 819일에 죽었다. 향년 82. 남편과 함께 묻혔다.

그런데 199712월 경기도 양평군 창대리에 있는 변수(1447-1524)의 묘가 발굴되었다. 시조 변안렬(1334-1390)의 부인인 원주원씨의 묘와 큰아들 변현(邊顯)의 묘를 이장하는 과정에서 많은 유물들이 발견된 것이다. 출토 유물 중에는 지석(誌石)과 목관(木棺), 명기(明器), 사발(), 경덕원보(景德元寶), 황금동못, 금정(金鉦), 은정(銀錠), 운삽(雲翣), 운아삽(雲兒翣)등과 요선철릭(腰線帖裏)을 비롯해 단령(團領), 답호(褡胡), 액주름포(腋注音袍) 저고리, 속바지(), 모자(帽子), 복건(㡤巾), 솜버선(+), 악수(幄手),멱목(幎目), 이불, 허리띠, 손싸개 등 30 여점의 의류와 관복차림의 남 · 녀상, 각 종 악기를 연주하는 주악상(奏樂像), 안장만 올려놓은 소형 말 등 22점의 목각인형(木偶)이 포함되어 있었다. 이들 유물은 국립민속박물관에 기탁되었는데, 조선시대 복식연구나 생활사 연구의 중요한 자료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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