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안열의 후예,조선에서 벼슬 살다 7 └ 성고선생의 역사이야기

뜰 앞의 늙은 소나무를 사랑해 그 집에 무송당(撫松堂)이라는 편액(扁額)을 달았다.(撫松齋2006815일에 재건되었다) 이것은 날씨가 추워진 뒤에야 송백(松柏)이 나종에 시드는 것을 안다는 뜻을 취한 것이다. 성종 조에 늙었다고 검교호조참판을 제수하고 매달 고기와 술을 하사했다. 그 뒤 예조참판으로 옮겼으나 병이 걸려 1485(성종 16) 104일에 죽었다. 1486(성종 17) 216일에 양주 동면(東面) 주을동(注乙洞) 광암(廣巖)(남양주시 別內面 廣田里 山 141-2번지)남쪽 언덕에 장사지냈다. 뒤에 아들 수()의 훈공으로 예조판서 겸예문관제학지경연춘추관사에 추증되고, 원평군(原平君)에 추봉되었다. 부인은 둘이 있었는데, 첫째부인은 참의 김권(金權)의 딸인 청풍김씨다. 묘는 남편 무덤 뒤에 庚坐로 있다, 둘째부인은 전서(典書) 유태(柳怠)의 손녀요, 유역생(柳易生)의 딸인 진주유씨(晉州柳氏)인데 1410(태종 10)에 태어나 1490(성종 21)94일에 죽었다. 향년 81. 묘는 남편의 무덤 오른쪽에 있다.

상회는 4(· +· 伍千 · ) 2(趙鐵堅 · 趙孝孫에게 시집갔다)를 두었다. ()는 음사(蔭仕)로 한성서윤, 종부시 전첨(典籤), 군자감 첨정을 지냈고, 예조참의에 추증되었다. 묘는 아버지 무덤의 다음 유좌(酉坐)에 있다. 부인은 부사(府使) 정신조(鄭臣祖)의 딸 숙부인 연일정씨다. 남편과 함께 묻혔다. 차남 환(+)은 행절충장군(行折衝將軍) 월곡첨사(月谷僉使)를 지냈으며, 호조참판에 증직되었다. 묘는 광암(廣巖) 선영(先塋)에 있다. 부인은 현감 전유의(全由義)의 딸인 정선전씨(旌善全氏). 남편과 함께 묻혔다. (+)은 외아들 사겸(士謙)을 두었는데, 사겸(士謙)은 자가 흥생(興生), 1446(세종 28)에 태어났다. 음직으로 내금위에 근무하다가 중종반정에 가담해 정국공신(靖國功臣) 4등에 책봉되고 원양군(原陽君)에 봉해졌다. 호조판서 겸지의금부사에 증직되고 시호는 양호공(襄胡公)이다. 묘는 남양주시 별내면 광전리 주을동(注乙洞) 광암(廣巖) 선영(先塋)에 있다. 부인은 장령 이혼(李渾)의 딸이요, 연성(延城)부원군 증영의정 문강공(文康公) 저헌(樗軒) 이석형(李石亨)의 손녀인 연안이씨다. 남편과 함께 쌍분으로 묻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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