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안열의 후예,조선에서 벼슬 살다 5 └ 성고선생의 역사이야기

3자 희영(希潁)은 평시령(平市令)을 지냈고, 그 후손들은 문경을 거쳐 현재 경산 자인에 많이 살고 있다. 4자 희달(希達)은 자가 세통(世通)인데, 1454(단종 2)에 태어났다. 벼슬이 함종(咸從)현령에 이르렀다. 1509(중종 4) 414일에 죽었다. 부인은 현령 계우(啓佑)의 딸 인천이씨다. 1517(중종 12)에 태어나 1542(중종 37)에 죽었다. 묘는 용인 기곡(器谷)에 있다.

()3(希俊 · 希乂 · 希康)을 두었다. 장자 희준(希俊)은 부사직(副司直)을 지냈다. 묘는 금천(金川) 강남면(江南面) 피곡(陂谷)에 있다. 부인은 부사 윤보상(尹輔相)의 딸인 파평윤씨다. 묘는 현()에서 40리 떨어진 전석현(磚石峴) 북쪽 기슭에 계좌(癸坐)로 있다. 차자 희예(希乂)는 충무위(忠武衛) 부사직(副司直)을 지냈으며, 서울에서 처음 영주(榮州)로 내려와 살았다. 묘는 순흥(順興) 수민단(壽民丹) 요산동(腰山洞)에 자좌(子坐)로 있다. 부인은 이시생(李始生)의 딸 인천이씨다. 3자 희강(希康)은 통제사(統制使)를 지냈고, 부인은 인천이씨다. ()1남 희일(希一)을 두었는데 부인은 진주강씨다.

()의 둘째아들 상조(尙朝)는 남부령(南部令)을 지냈다. 부인은 정랑 김유공(金有恭)의 딸인 순천(順天)김씨다. 상조의 아들 호()는 어모장군(禦侮將軍) 행충무위(行忠武衛) 대호군(大護軍)을 지냈다. 묘는 양주군 진관면(眞官面) 백양곡(白楊谷)에 곤좌(坤坐)로 있다. 부인은 참봉 오세(吳洗)의 딸 숙인 해주오씨다. 남편과 함께 묻혔다.

()의 넷째아들 상근(尙覲)은 선절장군(宣節將軍) 충무시위사(忠武侍衛司) 중령호군(中領護軍) 겸군기판관(軍器判官)이었다. 1443(세종 25)에 죽었다. 묘는 시조묘 왼쪽에 건좌(乾坐)로 있다. 상근의 아들 효동(孝同)1460(세조 6)에 무과에 급제해 명천(明川)부사를 지냈다. 부인은 공조판서 정(+)의 딸 경주이씨다

()4째 아들 상회(尙會)의 호는 무송당(撫松堂)이요 자는 전하지 않는다. 1399(정종 1) 에 태어나 1485(성종 16) 104일에 죽었다. 향년 87. 1420(세종 2)에 생원시에 합격하고, 1434(세종 16)에 별시문과에 급제해(崔恒 · 朴元亨 · 朴彭年同榜), 승문원 정자 · 주서(注書), 병조 좌랑, 성균관 직강을 거쳐 함양(咸陽)군수로 나갔다. 임기를 채우고 사간원 정언에 임명되었다가 사헌부 지평으로 옮겼다. 사헌부 장령, 승문원 부지사, 판군자감사, 원주목사로 나갔다가, 내직으로 들어와 선공감 판사를 역임했다. 첨지중추부사를 거쳐 호 · 예조 참의가 되었으나 사람들의 시기를 받아 벼슬을 버리고 고향집으로 돌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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