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안렬의 후예들 2 └ 성고선생의 역사이야기

그는 풍채와 용모가 크고 헌칠했으며, 의기와 절개가 높고 뛰어나 약관(弱冠)에 경세제민( 經世濟民)의 큰 뜻을 품었으나, 아버지가 화를 당하고부터는 슬퍼서 병이 났고, 3년상을 다 치룬 후에도 베옷을 입고, 문을 닫고, 출세할 뜻이 없었다. 국가에서 여러 번 억지로 관직에 임명했으나 상소를 올려 사퇴하기를 빌었다. 그러나 끝내 허락을 받지 못해 부득이 취임했는데, 목민관으로 나가면 백성들이 떠난 후에 사모하는 비석을 세웠다. 그러나 친구들과 술로 세월을 보냈다. 그는 술을 먹으면 눈물을 흘리면서 가슴을 풀어 헤치고 내 가슴과 배에 과연 명리심(名利心)이 있는가 봐주시오. 깊은 산 속에 문 닫고 엎드려 여생을 마칠 것을 가만히 바랬는데, 그렇게 못하는 것이 한스럽다고 했다.

조선건국에 저항한 인사들의 자손들을 억지로 벼슬시키려 하는 시국을 한탄한 것이다. 부인이 셋인데, 첫째부인은 전리총랑(典理惣郞) 이달존(李達尊)의 딸, 계림부원군(鷄林府院君) 문충공(文忠公) 이제현(李齊賢)의 손녀, 보문각제학(寶文閣提學) 상당군(上黨君) 백문보(白頤正)의 외손녀인 정부인(貞夫人) 경주이씨다. 11녀를 두었다. 둘째부인은 대제학 의성군(宜城君) 양정공(良靖公) 남좌시(南佐時)의 딸인 의령남씨다. 11녀를 두었다. 셋째부인은 전농시승(典農寺丞) 이비(李王+)의 딸이요, 직제학 이충증(李充曾)의 손녀딸인 동성이씨(東城李氏). 52녀를 두었다.

3자 예()는 무과에 급제해 판훈련원사(判訓鍊院事)를 지냈다. 첫째 부인은 지보주사(知甫州事) 김보린(金寶麟)의 딸인 안동김씨(安東金氏). 둘째 부인은 판삼사사(判三司事) 노향(盧珦)의 딸인 노씨(盧氏). 변안렬의 딸은 무안대군(撫安大君) 방번(芳蕃)에게 시집갔다. 방번이 변안렬의 사위라는 것은 이색(李穡)의 변안렬 행장(行狀)에도 있고, 원주변씨족보에도 있다. , 선원보(璿源譜)에는 방번의 부인으로 개성왕씨만 기록되어 있고, 원주변씨는 보이지 않는다. 아마도 변안렬이 역성혁명에 저항하다가 죽자 선원보를 만들 때 삭제한 것이 아닌가 한다. 방번이 17세에 죽었고, 변안렬이 고려 말에 죽었으니 그의 딸인 원주변씨가 방번과 정략결혼을 했다면 원주변씨가 첫째 부인이었을 가능성이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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