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안열은 누구인가? 3 └ 성고선생의 역사이야기

강력한 상비군으로서의 공병이 창설된 것이다. 이 상비군은 어디서 선발했나? 유연이 양광도도순문사(陽廣道都巡問使), 변안렬은 양광도원수(楊廣道元帥)를 겸하고 있었던 것으로 보아 양광도(경기도)병사를 징집한 것 같다. 뿐만 아니라 제주도 목호(牧胡)를 토벌할 때는 변안렬이 양광도 만이 아니라 전라도 군사도 거느리고 간 것으로 보아, 경기 전라도 군사가 변안렬군의 바탕을 이루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왜적이 주로 이 지역을 많이 처들어 왔고 변안렬이 승승장구했던 것도 향병(鄕兵)의 향토애와 지형지물 숙지에 있었던 것이 아닌가 한다.

1373(공민왕 22)에는 양광전라경상도도통사(楊廣全羅慶尙道都統使) 최영(崔瑩)과 더불어 제주(濟州)의 목호(牧胡)를 토벌했다. 제주 목호 토벌에 관한 기록은 최영의 열전에 자세히 기록되어 있다. 그가 총사령관인 양광전라경상도도통사였기 때문이다. 이 때 명 태조가 임밀(林密) 등을 보내 제주마(濟州馬) 2천 필을 보내라고 했으나 흡적(哈赤) 석질리(石迭里) 필사초고(必思肖古) 독불화(禿不花) 관음보(觀音保) 등의 목호(牧胡)들이 300필만 보내고 더 이상 보내려 하지 않자 드디어 공민왕이 제주도를 칠 것을 논의했다. 그리하여 최영을 양광전라경상도도통사, 염흥방(廉興邦)을 도병마사(都兵馬使), 이희필(李希泌) 변안렬을 양광도원수(楊廣道元帥), 목인길(睦仁吉) 임견미 (林堅味)를 전라도원수(全羅道元帥), 지연(池大+) 나세(羅世)를 경상도원수(慶尙道元帥), 김유(金庾)3도조전원수(三道助戰元帥) 겸서해교주도도순문사(兼西海交州道都巡問使)로 삼아 전선(戰船) 314, 사졸 25.600인을 동원해 제주도를 공격하기로 했다. 그리고 공민왕은 다음과 같은 교서를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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