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안열을 누구인가? 2 └ 성고선생의 역사이야기

변안렬의 친구인 간관(諫官) 우현보(禹玄寶)

가르치지 않은 백성을 싸우게 하는 것은 곧 백성을 버리는 것이라 했습니다. 하물며 싸움 이란 위험한 일이어서 한 번 이기고 한 번 지는 것에 존망(存亡)이 달려 있는 것이니 신중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국가에서는 평소에 예비함이 없이 백성은 싸움을 알지 못하니, 하 루아침에 변고가 있으면 창황해 갈피를 잡지 못하고 비로소 백성을 몰아 졸오(卒伍)에 충 당하니, 칼날을 맞대기 전에 소문만 듣고도 흩어질 것이니, 이들로써 싸우면 어찌 성공할 수 있겠습니까? 비록 손자(孫子)나 오자(吳子)를 장수로 삼아도 또한 능히 감당할 수 없을 것이오니, 마땅히 미리 장수를 뽑아서 병졸을 모아 훈련시켜 가르치고 익혀서 사람마다 귀 에 쇠북소리를 익히고 눈에 정기(旌旗)를 익숙하게 해서 모두 전쟁을 해도 놀라지 않고, 해야 할 일이면 비록 강한 적을 만나더라도 모두 능히 용감히 싸울 것이니 어찌 낭패해 차 례를 잃겠습니까?

군사를 쓰는 길은 오로지 장수에게 달려 있는데, 훌륭한 장수의 재주는 자고로 어렵다고 하오니 마땅히 자제(子弟)로써 기량(器量)과 견식(見識)이 있는 자를 가려 아울러 병법을 배우게 하고 무예를 익히게 하며, 항상 교열(敎閱)해 정예(精銳)를 가르쳐 길렀다가 그 재 주가 이루어짐을 기다려 이를 쓰면 훌륭한 장수를 어찌 얻기 어렵고, 군사를 씀에 규률을 잃을 걱정이 있겠습니까? 옛날에 병서(兵書)로 사람을 시취하는 과()가 있었음도 곧 이런 뜻에서였습니다.

먹는 것은 백성의 하늘이니 무겁게 여기지 않을 수 없습니다. 공자(孔子)도 군사를 말함에 먼저 먹는 것을 족하게 해야 한다고 했는데, 먹는 것이 부족하면 군사가 비록 많아도 장차 이를 어떻게 쓰겠습니까? 국가에서 군사를 씀이 이미 햇수로 오래 되었는데, 아직 식량을 축적해 갑작스런 일에 대비함이 없고 하물며 지금 우택(雨澤)이 때를 어겨 풍흉(豊凶)을 알 기 어려우니, 마땅히 널리 저축해 군량을 넉넉하게 하소서

국가에서 장졸을 미리 뽑아 훈련시키고 군량도 준비해 나라를 지키는 튼튼한 공병(公兵)을 길러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공민왕은 1373(공민왕 22) 8월에 의용좌우군(義勇左右軍)을 설치해 문화평리(門下評理) 유연(柳淵)에게 좌군을, 밀직사 변안렬에게 우군을 지휘하게 했다.

 


덧글

댓글 입력 영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