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안열 가문의 기원 6 └ 성고선생의 역사이야기

이 중 변숙은 원나라에 있을 때, 1351(충전왕 3)에 대책(對策)으로 한림학사(翰林學士)에 제수되고, 변안렬을 따라 고려에 와서는 전객시부령(典客寺副令)을 거쳐 낭장(郎將) · 전논시정(典農寺正) · 태상소경(太常少卿) · 밀직부사(密直副使) · 문하평리(門下評理) · 공부전서(工部典書) · 보문각대제학(普文閣大提學) · 호부전서(戶部典書) 등 고위관직을 역임하다가 변안렬이 죽은 1390(공양왕 2)에 면직되었다. 그는 포은(圃隱) 정몽주(鄭夢周)의 제자이고, 조의생(趙義生) 임선미(林先味) 길재(吉再) 전귀생(全貴生) 이숭인(李崇仁) 유구(柳玽) 우현보(禹玄寶) 원천석(元天錫) 등 절의파들과 가까웠다. 그런데 정몽주가 격살되자 이들은 뿔뿔이 흩어져 은거하거나 죽었다. 이에 변숙은 아들 을충(乙忠)을 데리고 지팡이를 집고 벽란진(碧瀾津)을 건너 배천(白川) 남쪽 물굴리(勿屈里)에 돌아가 그 마을을 모려(慕麗)라고 하고, 밭갈이하면서 은거했다. 그는 정몽주 · 길재 · 조의생 · 임선미를 스승으로, 신안(申安) · 우현보 · 조승숙(趙承肅) · 채귀하(蔡貴河) 등을 벗삼아 항상 백이송(伯夷頌)을 외우고 옛 왕씨력(王氏曆)을 썼다. 1392(태조 1) 7월에 이성계가 조선왕조를 세우자마자 16일에 태조가 변숙을 공조전서로 불렀으나 내 비록 중국 사람이긴 하나 노국공주(魯國公主)를 위해 공민왕에게 신사(臣事)했거늘, 어찌 차마 북쪽을 향해 두 임금을 섬기겠느냐?”라고 하고 모려에 은거했다고 한다. 1399?(정종 1)에 죽으니 유명(遺命)에 따라 재경동(宰卿洞)에 장사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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