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안열 가문의 기원 4 └ 성고선생의 역사이야기

()의 아우 여()는 현의 아들이다. 1232(고려 고종 19)에 몽고가 송경(松京)을 둘러쌓다. ()는 향호(鄕戶)로서 적에게 잡혔다. 적이 왕이 있는 곳을 물으니 그는 말하지 않았다. 적이 불로 지지려 했으나 끝내 불지 않으면서 정색을 하고 욕하기를 군신(君臣)은 부자와 같은 의리가 있는 것인데 설사 신자(臣子)가 군부(君父)가 피해 있는 곳을 안다고 해도 어찌 너희들에게 알려 주겠느냐고 했다. 적이 죽이려 하자 적 중의 한 사람이 이 사람은 의인(義人)이다. 죽여서는 안 된다고 하고 풀어주었다. 그는 죽음을 면하고 산곡 사이에 숨어 있었다. 왕이 개경으로 돌아와 그의 충절을 듣고 찾아서 상장군에 임명하고, 태천백(泰川伯)에 봉했다. 1279(충렬왕 5)에 죽었다. 이가 황주변씨(黃州邊氏)의 시조이다. 그러나 나말려초에 변멸성(邊蔑性)의 아들 고승 균여(均如)가 황주의 북형악(北荊岳) 남록(南麓)에서 낳았다는 것으로 보아 일찍부터 황주에는 변씨가 살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그런데 변려(邊呂)와 그 다음의 변윤(邊允)의 세대수가 명확치 않아 다만 여후’(呂後)라고만 적고 있다. 이 이외도 변안렬의 계보상의 인물 중 당대 기록이 확인되지 않은 사람이 있고 생존연대도 의심스러운 경우가 있다. 부인 김씨는 1266(고려 원종 7)에 죽었다.

9세 윤(= 또는 )은 여()의 아들이다. 자는 윤지(允之), 호는 서해선생(西海先生)이다. 1172(명종 2)에 태어나 서해도안찰사(西海道按察使)가 되었다. 1207(희종 3)에 죽었다. 부인은 정당(문학) 최숙(崔俶)의 딸 최씨다. 1208(희종 4)에 죽었다. 10세 유()는 윤()의 아들이다. 처음 이름은 보(). 1199(신종 2)에 태어나 1208(희종 4)에 죽었다. 정의대부(正義大夫) 공부의랑(工部議郞)을 지냈다. 부인은 평장사 황보기(皇甫琦)의 딸 황보씨다. ()의 딸은 정문감(鄭文鑑)에게 시집갔다.

11세 제()는 유()의 아들로 1217(고려 고종 4)에 태어나 1289(충열왕 15)에 죽었다. 향년 73. 광록대부(光祿大夫) 검교참지정사(檢校叅知正事)를 지냈다. 부인은 중서(사인) 이소(李昭)의 딸이다. 12세 눌()은 제()의 아들로 자()가 창언(昌彦)이다. 1224(고려 고종 10)에 태어나 1269(고려 원종 10)에 죽었다. 향년 46. 판시중(判侍中)을 지냈다. 부인 백씨(白氏)는 낭중(郎中) ()의 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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