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안열 가문의 기원 3 └ 성고선생의 역사이야기

어융(御戎)4세 유령(有寧)은 호가 석천옹(石川翁)인데, 송나라의 판동서(判同署)로서 1138(고려 인종 16)에 장공주(長公主)의 배신(陪臣)으로서 고려로 와 중문지후(中門祗侯)에 임명되고, 연성부원군(淵城府院君)에 봉해졌다. 이가 장연변씨(長淵邊氏)의 시조이다. 유령을 시작으로 변씨는 중국의 변씨와 연결을 시킨 것이다. 부인은 시중상서(侍中尙書) 태보문하시랑(太保門下侍郞) 오정필(吳挺弼) 의 딸인 해주오씨(海州吳氏). 묘는 해주 억건리(億健里) 두항동(頭項洞) 경좌(庚坐)에 있는데, 남편과 함께 합장되어 있다.

5세 언경(彦卿)은 무과에 급제해 동정(同正) 벼슬을 했다. 부인은 해주표씨(海州表氏). 묘는 해주 화분교(火焚橋)에 남편과 함께 합장되어 있다. 6세 충효(沖孝)는 검교흥의위장군(檢校興義衛將軍)이었다. 부인은 당악양씨(唐岳楊氏). 묘는 안악(安岳) 청룡포(靑龍浦)에 남편과 함께 합장되어 있다. 동생 충제(忠悌)도 검교흥의위장군을 지냈다. 7세 예()는 충효의 아들이다. 응공하대위장군(應功下隊衛將軍)을 지냈다. 부인은 죽산안씨(竹山安氏)로 묘는 장연(長淵) 두산(頭山) 서록(西麓)에 남편과 함께 합장되어 있다. 동생 현()은 충제의 아들이다. 이름을 요()라고도 하고, 호는 소황자(小黃子)라 했다. 1196(고려 명종 26)에 죽었다. 황주 삼전(三田) 서쪽 언덕에 장사지냈다. 부인은 해주최씨로 남편이 죽은 지 3일 뒤에 죽어 남편과 합장했다.

8세 회()는 예()의 아들이다. 호를 암곡(巖谷) · 초수(樵叟)라 했다. 문과에 급제해 중현대부(中顯大夫) 감문대호군(監門大護軍)이 되었다. 문집이 있다. 부인은 강씨(康氏)인데 묘는 재령(載寧)에 있다고 한다.

[3] 黃州邊氏

 

八世 呂(泰川伯)

九世 允

十世 宥

+ 鄭文鑑

十一世 制

十二世 訥

十三世 碩

十四世 諒

十五世 安伯

安烈

安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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