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안열 가문의 기원 2 └ 성고선생의 역사이야기

()은 한()나라의 경조윤(京兆尹)이었다. 사기인물지에 봉은 진유(陳留) 사람으로 환제(桓帝) 때 경조윤이 되어 정치에서 관용과 인()을 숭상하고 백성을 불쌍히 여겨 3(三輔: 한 무제 때 지방장관)들이 감탄했다. 선시(先時)의 조광한(趙廣漢)과 장창(張敞)과 왕준(王駿) 등과 뒤의 연독(延篤) · 변봉이 모두 경조윤으로써 능력이 있었다고 알려졌다. 세인들이 옛날에는 조() · () · () 3(三王)이 있었고, 뒤에는 변() · () 2(二君)이 있었다고 했다. ()은 한()나라 구강태수(九江太守)였다. ”한나라 의 양()과 전양(傳讓)이 재명(才名)이 있었기 때문에 조조(曹操)가 시기해 죽였다. (양이 구강(九江)에서 피살되었기 때문에 호를 구강태수라 했다. 구강의 사민(士民)들이 은혜를 많이 받아 사당을 세워 제사를 지냈다.

()는 남당(南唐)의 대부였다. ()은 송()나라 형주자사(邢州刺史)였다. 사기인물지에 ()이 형주를 맡았을 때 마침 거란(契丹)이 쳐들어와 도적질을 하니, 진종(眞宗)이 단연(澶淵)에 있다가 밀조(密詔)를 내려 편의를 들어주고 성()을 보존하라고 했다. 그러나 숙은 조서를 숨기고 장정들을 독려해 성에 올라가 모든 문을 열고 병기(兵器)와 장폐(障蔽)를 가지고 기다렸다. 거란의 기병(騎兵)들이 성 아래에 임박했을 때 숙이 더불어 싸워 이기니 거란은 그 계략을 혜아릴 수가 없었고, 세인들은 변숙이 도적을 막으려고 성에 먼저 올라간 것이다라고 했다. ()은 송()나라 평공의 증손 앙()의 후손이다. 변송(汴宋) 때 문하습비후대아찬(門下習秘侯大阿湌)이었다. 그러나 이 상계는 변안렬 가계와 직접 연결이 되는 지는 알 수 없다.

2()는 송나라 평장사(平章事)인 중량(重亮)이요, 3세는 송나라 병부상서인 연()이라 한다.

 

[2] 長淵邊氏 世系

四世 有寧

五世 彦卿

六世 冲孝

冲悌

七世 睿

八世 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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