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안열 가문의 기원 └ 성고선생의 역사이야기

변안렬의 본관은 원주(原州)이다. 원주변씨의 조상은 황제(黃帝)로 소급된다고 하나 믿을 수 없다. 고려, 조선시대의 가문들은 자기 가문의 위상을 높이기 위해 그 조상이 중국으로부터 왔다고 조작한 경우가 많다. 그러니 중국과 연계된 가계는 신용할 수 없다. 족보에 나타나 있는 변안렬의 상계(上系)는 다음과 같다.

 

 

[1] 邊安烈上系

 

(微子上世系) 黃帝-----------(微子下世系) (微子)-----19御戎(宋 平公 字子邊 子孫因以邊爲姓)

一世 御戎

邊卬

邊伯

邊韶

邊鳳

邊肅

邊鏡

二世 重亮

三世 演

황제(黃帝)의 성은 공손(公孫), 또는 희()였다. 중국에서 그 후예는 은() · ()을 거쳐 송 19세 어융(御戎) 때 변성(邊姓)으로 바뀌었다. 어융의 자()가 자변(子邊)이었기 때문에 변()을 성으로 삼았다는 것이다.

어융의 동대(同代)에 앙() · () · () · () · () · () · () () 등이 있다. ()은 송나라 평공(平公)의 증손으로 대사도(大司徒)를 지냈으며, 자손들이 농서(隴西) · 금성(金城) · 무추(武秋) · 진유(陳留) 등지에 살았다. ()는 한()나라 상서령(尙書令)이었다. 사기(史記) 인물지(人物誌)에 소()의 자()는 효선(孝先)이니 준의(浚儀)사람이다. 문학으로 이름이 알려져 수 백 사람을 가르쳤다. 한 번은 낮잠을 자는척 했더니 제자가 조롱하기를 변소(邊韶)가 배가 편편하게 살찐 것은 독서에는 게으르고 단지 잠이나 자려고 하기 때문이다.”라고 했다. 변소가 응대하기를 변()이 성()이요, ()가 자()인 사람이 배가 편편하게 살찐 것은 5(五經)의 책상자이니, 다만 잠을 자면서도 경 읽기를 일삼는다고 하니, 조롱하던 사람이 크게 부끄럽게 여겼다고 한다. 그래서 세상 사람들이 변소는 잠을 자면서도 경()을 읽기를 좋아하고, 태수로 좌천되었다가 정승이 되었다고 했다. 여러 번 북지(北地) 태수(太守)로 좌천되었다가 조정에 들어가 상서령이 되고, ()나라 정승이 되어 관()에서 죽었다.


덧글

댓글 입력 영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