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제의 기문 진출 이후의 국제정세 └ 역사일반

백제와 왜가 가까워지기 시작하자 대가야는 위기를 느꼈다. 옛 마한 지역의 독립을 지원하여 백제와 임나 사이에 완충지를 만들려는 노력은 이미 실패했다. 기문을 비롯한 대다수 지역이 백제의 수중에 들어갔다. 이 분쟁을 통하여 오히려 임나의 힘만 가지고는 백제와 맞서기 어렵다는 사실은 분명해져가고 있었다.

아직 임나에 소속된 나라들이 대가야의 통솔을 따르고 있다고 하지만, 백제가 임나를 직접 위협하기 시작하면 어떻게 될 지 몰랐다. 주변의 정세도 불리해졌다. 왜는 이미 백제의 편으로 돌아서 버렸고, 물부련 일행에 대한 습격 사건으로 감정까지 악화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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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립무원의 상태가 되는 것을 면하기 위해서는 무엇인가 돌파구를 찾아야 했다. 대가야의 선택은 신라에 접근하는 것이었다. 고구려도 있었지만 그것은 너무 위험한 선택이었다. 고구려와는 우호관계를 맺어 본 적도 없을 뿐 아니라, 고구려에 접근한다는 것 자체가 백제와 돌이킬 수 없는 적대관계가 됨을 의미한다.

이 때까지 백제와의 분쟁이라는 것은 옛 마한 지역이라는 완충지역을 놓고 벌인 것이었지, 대가야나 임나의 운명을 걸고 벌인 분쟁은 아니었다. 그러나 고구려와 동맹을 맺는다면 문제가 심각해진다. 백제가 최대의 적인 고구려의 동맹을 가만히 놓아둘 리는 없다. 대가야나 임나가 직접적인 위협을 받을 수밖에 없다.

백제와의 관계에서도 운신의 폭이 좁아진다. 백제가 고구려의 동맹과 타협하려 할 턱이 없으니, 싸워 이기는 것 이외에는 선택의 여지도 없어진다. 자신의 운명을 걸만큼 고구려를 믿기도 어렵다. 잘못하면 고구려에게 실컷 이용만 당할 수도 있었다. 이것은 대가야로서도 너무 위험한 도박이었다.

반면 신라에 접근하는 것은 입장이 전혀 달라진다. 이 시점에서 신라는 백제의 동맹이다. 따라서 신라와 동맹을 맺었다고 해서 백제가 대가야를 비롯한 임나를 적대시할 수는 없다. 그러면서도 백제와 신라는 막후에서 임나를 놓고 경쟁을 벌여야 하는 입장이 된다. 그 틈을 이용해서 자립의 기반을 잡을 수 있으리라는 것이 대가야 측의 계산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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