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령왕의 등장과 가야 2 └ 역사일반

많은 임나 소속국 중에서 무엇 때문에 대가야가 중심세력으로 부상하게 되었는지 자세하게 알 수는 없지만, 5세기 후반쯤 되면 대가야가 임나의 맹주로 부상하게 되었음은 확실하다. 그리고 이 사실은 불가피하게 임나 자체의 개편을 부르지 않을 수 없었다. 무엇보다도 임나를 대표하는 나라가 바뀌어야 했던 것이다. 임나에 소속된 나라들을 결집시켜 끌어 나아가려면 임나의 의장 역할을 맡는 나라가 기본적인 힘을 갖추고 있어야 한다.

힘을 잃은 금관가야로서는 더 이상 임나의 의장을 맡을 수 없었다. 임나의 조직도 힘이 있는 대가야 중심으로 개편하지 않을 수 없었다. 연맹체의 의장자리 같은 것은 항상 바뀔 수 있으므로, 그 전에 금관가야가 맡고 있던 자리를 대가야가 대신하는 데에는 별 문제도 없었다.

임나가 이렇게 대가야 중심으로 재편되고 난 이후에는 임나의 성격 변화도 두드러지게 나타나기 시작했다. 자체정비가 어느 정도 마무리 되자 대가야가 임나의 맹주로서 본격적으로 대외활동을 개시했던 것이 변화의 원동력이었다. 그 중에서도 주목할만한 활동이 475년 중국의 남제(南齊)에 독자적으로 사신을 파견하여 책봉을 받은 것이다. 대가야가 책봉을 받았다는 사실은 대가야를 중심으로 한 임나의 독립성을 국제적으로 선포했다는 의미가 된다. 비록 남제측에서 곧바로 왜왕 무에게 다시 가라를 포함한 육국 제군사 대장군을 주어서 빛이 바래기는 했지만, 주변의 나라들에게 독자적인 외교를 할 수 있다는 점을 보여준 셈이다.

가야측에서는 능력을 과시하듯, 481년 신라를 침공한 고구려군을 격퇴하기 위해 백제와 함께 구원병을 파견했다. 어엿하게 한 몫 할 수 있다는 것까지 보여주었다. 496년에는 신라의 소지왕에게 꼬리가 다섯 자에 이르는 흰 꿩을 보내며 우호를 다졌다.

광개토왕 시절에 줄을 잘못 서서 혼이 난 가야로서는 자주·자립의 중요성을 절감할 수밖에 없었다. 재기를 시도하는 시점에서 대외적으로 하나의 독립세력임을 인정받으려 시도하는 것은 일면 당연하다고 할 수 있다. 이제 임나는 백제의 조종에 따르는 허수아비같은 존재가 아니라 명실상부하게 가야 자체를 위한 연맹체가 된 것이다.

그렇지만 새롭게 독립을 쟁취하려는 시도에 난관이 없을 수는 없었다. 고구려라는 강적이 버티고 있고, 고구려를 물리쳐야 한다는 공동의 목표가 존재하는 한, 가야의 독립노력은 이런 긴박감 덕분에 어느 정도 효과를 볼 수 있었다. 그렇지만 이 효과가 오래 가지 않았던 것이다. 난관이 닥친 것은 이율배반적이게도, 그동안 가야는 물론 백제와 신라에게 위협을 주던 고구려 세력이 퇴조하면서 부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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