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반의 사상 1 └ 성고선생의 역사이야기

조선시대의 양반은 유교, 특히 주자학(朱子學)을 신봉하였다. 주자학은 조선왕조를 건국한 사대부들의 이데올로기였다. 주자학은 우주론(宇宙論)과 심성론(心性論)을 결합시킨 송나라의 성리학(性理學)에 바탕을 두고 있었다.

조선의 양반사회는 유교의 도덕적 수양을 중시하였고, 그것을 가족을 중심으로 하는 인륜(人倫)을 통해 실천하고자 하였다. “효는 백행지원(百行之源)이라 해서 충()보다도 효()를 더 중시하였다.

도덕적 수양은 우선 개인의 수양에 집중되었다. (), (), (), (), ()이 그것이다. 이는 수기(修己)의 덕목이요, 치인(治人)의 전제조건이기도 하였다. 수신(修身) 제가(齊家) 치국(治國) 평천하(平天下)는 이러한 덕목의 실천순서였다. 5(五倫; 父子有親君臣有義夫婦有別長幼有序朋友有信)3(三綱; 父爲子綱君爲臣綱夫爲婦綱)은 그 강목에 해당하였다.

개인에서 가족으로, 가족에서 친족으로, 친족에서 사회와 국가로 관계를 확산해 나가는 것이 유교의 윤리였다. ‘친친이쇄(親親而殺)로서 가까운 곳에서 소원한 곳으로 인간관계를 확산해 나가는 것이었다. 이것은 사회를 안정시키는 안전핀이라고 생각하였다. 유교경전은 이러한 원리를 강론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또한 이것은 군주와 가부장(家父長)이 중심이 되는 수직적 유교사회를 건설하는 기초가 되었다. 또한 주자학은 이학지상주의(理學至上主義)의 중앙집권적 문치주의를 합리화하는 이기심성론(理氣心性論)을 집중적으로 발달시켰다.

퇴계와 율곡의 철학은 이러한 이기심성론의 이론을 정리한 공로가 있다. 그러나 남명(南冥)은 이론보다는 경의(敬義)의 실천이 우선이라고 생각하였다. 퇴계와 율곡이 조선적 주자학을 이론화하는 데는 기여하였지만 또한 주자학을 교조화 독선화하는 데도 일조하였다.

조선 초기까지만 해도 주자학이 국가의 지배사상이기는 하였지만 불교도교음사(淫祀)와도 조화하는 다종교사회를 구가하였다. 그러나 16세기 퇴계와 율곡의 순정주자학이 정립됨에 따라 주자학은 독선화의 길을 걸었다. 건국 초기에 정도전의 불교에 대한 비판과 개혁이 있었고, 조광조가 도교의 소격서(昭格署)를 혁파시키려는 운동이 있었으며, 퇴계의 양명학(陽明學) 비판 등이 있었는데, 이것은 독선화의 단면들을 보여주는 것이다.

 


덧글

  • ㄴㅇㄹ 2013/12/03 14:44 # 삭제 답글

    조선이 그래도 15세기까지는 괜찮았는데 성리학 탈레반 사림 집권이후 정말 철저한 개막장 국가가 됐죠.
  • ... 2013/12/03 15:55 # 삭제

    망가지기 시작한건 훈구세력때부터 아닌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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