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의 간섭과 기황후 └ 역사일반

1275년에 충렬왕의 즉위와 함께, 원나라의 요구로 고려의 관제 자체도 격하되었다. 삼성육부의 체제는 상국(上國)의 제도로 분수에 맞지 않는다고 해, 중서문하성과 상서성을 합쳐서 첨의부(僉議府)로 고쳤다. 아울러 육부체제도 사사(四司)로 축소되었다. 이부와 예부는 합쳐서 전리사 (典理司), 병부는 군부사(軍簿司), 호부는 판도사(版圖司), 형부는 전법사(典法司)로 고치고, 공부는 폐지한 것이다. 중추원은 밀직사(密直司)로 바뀌었다.

왕실의 용어도 격을 낮추었다. 고려 초, 태조광종은 황제를 칭한 바 있었다. 뿐만 아니라 다른 고려의 군주들 또한 스스로를 짐(), 수도를 황성(皇城), 군주의 존칭을 폐하(陛下), 차기 보위를 예약한 임금의 장남을 정윤(正胤) 또는 태자(太子), 군주의 어머니는 태후(太后), 군주의 명령은 조()와 칙()으로 부르는 등 황제의 제도를 사용했다.

그러나 충렬왕 때부터 짐()은 고(), 폐하(陛下)는 전하(殿下), 태자(太子)는 세자(世子) 등으로 바꾸어 불렀다. 충렬왕 이후, 고려왕은 원나라의 공주를 왕비로 받아들여 이른바 원나라의 부마국(鮒馬國)이 되었기 때문에 황제급의 묘호를 피하게 하게 된 것이다. () 또는 종()을 붙였던 왕의 묘호도 왕()으로 고쳤다.

또 원의 요구로 인질을 의미하는 토루가를 보내야 했다

. 원의 영향이 커지면서 왕실과 상류층에서는 몽고식 이름을 가지고 몽고어를 사용했으며, 몽고식 의복과 변발이 유행하게 되었다. 이밖에도 원에서는 고려 왕족의 혈족혼을 비판하고 노비제도의 개혁도 요구한 적이 있었다. 그렇지만 고려에서 이 요구는 받아들이지 않았다.

원나라의 간섭은 경제적 수탈로도 나타났다. 원나라는 여러 가지 명목으로 공물을 강요해 금··포 등을 빼앗아갔다. 특히 인삼··약재·(해동청) 등 특산물을 요구해 많은 부담을 안겨주었다.

심지어 공녀(貢女환관(宦官)까지도 요구해왔다. 원에서는 고려 출신 공녀(貢女)들을 대단히 선호했다. 대부분의 공녀들은 원의 유력한 귀족과 혼인했고, 원 귀족 사회에서는 고려 여자를 들여야 명가(名家)로 인정받는 풍조가 생겼다. 그 중에는 기황후(奇皇后)처럼 원의 황후가 되는 인물도 나왔다. 그렇지만 고려에서는 공녀로 가는 것을 꺼리는 경우가 많았다. 원에 공녀의 폐지를 요청하기도 하고, 일찍 혼인시켜 공녀로 가지 않도록 하기도 했다.


덧글

  • 솔까역사 2013/10/28 12:18 # 답글

    http://kallery.net/Q/read.php?g_clss=forum&g_prcss=thrd&g_brd=20&g_thrd=1739
    백제의 채녀, 왕고의 공녀, 이조의 진헌녀와 환향녀, 일조의 위안부까지 한국 여인은 희생을 많이 치렀습니다. 다 나라가 힘이 없어서겠지요. 촌지와 함께 한국 고유의 독특한 생존방식이었다고 할 사람이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어쨋든 미군철수가 정답입니다.
  • cgrrtt 2013/10/28 13:59 # 삭제

    이병신은 미군철수가 도대체 거기서 왜 나와?
    그리고 백제가 여자를 바쳤다고 하는 소리는 이놈한테 처음 듣네.
    그리고 어느 민족이든 항상 강성할 수는 없고 나라 힘이 약하면 수모를 당하는거지, 원 간섭기, 일제 빼고는 별로 당한 것도 없는 우리만 꼭 줄창 당한 것처럼 일반화하네.
    도대체 이새끼는 국적이 어디야?
    네가 빠는 짱개는 북방민족한테 허구헌날 점령당해서 여자들이 북방민족 정액받이로 수천년간 시달린 나머지 짱개 고유의 유전자 자체가 사라졌다더라. 이자식아.
  • ㄴㅇㄹ 2013/10/28 14:06 # 삭제

    cgrrtt/ 솔까가 임나일본부를 주장해서 하는 소리인데 일본도 미군에게 점령당하고 여자들이 정말 엄청 욕(?)을 봤지요.
    일본인 유전자에 아마 백인, 흑인 유전자가 꽤만만치않게 침투했을 겁니다.
  • 앞서나가는 황제펭귄 2013/10/28 13:25 # 답글

    공녀들이 노예비스무리한건 아니었군요. 하긴 아무리 기황후가 천지개벽할 정도의 인물이라도
    신분이 엄연히 있는 사회인데 노예에서 황후가 되는건 불가능일테니.
    명가로 인정받았다는 것도 재밌네요.
  • 零丁洋 2013/10/28 15:01 # 답글

    글을 읽다 보니 원의 고려에 대한 인식이 궁금하군요.
  • 라라 2013/10/29 17:48 # 답글

    원에서는 고려 왕족의 혈족혼을 비판하고 노비제도의 개혁도 요구한 적이 있었다. 그렇지만 고려에서 이 요구는 받아들이지 않았다.

    1.어떤 요군지요?

    2. 생깠다는건데 가능한 건가요?

    과도한 공물은 바치면서
  • 블레이드 2013/10/30 08:08 #

    고려가 불안해지면 자기들이 통제하는데 곤란하니까 그런건데, 고려 기득권층은 자기들의 기득권 빼앗기는 건 죽어도 용납을 못했네요. 원에서도 그건 어떻게 못했다니 정치라는 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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