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조에 대한 역사적 평가 1 └ 성고선생의 역사이야기

역사에서 선조처럼 이중적으로 평가되는 사람이 드물다. 선조는 실상 자질이 훌륭하지 않은 것은 아니나 임란을 당해 한 것이 없다. 서울을 사수하겠다고 하고 평양으로 달아났고, 평양을 끝까지 지키겠다고 하고 의주로 달아났다. 의주로 달아나서는 내부(內附)하는 것이 본래 나의 뜻이라면서 한음 이덕형을 요동도사에게 보내 내부를 받아 줄 것을 간청했다. 이덕형은 요동안무사 학걸(郝杰)에게 애걸해 원병 5천과 선조의 내부를 허락받아 왔다. 그러나 서애 유성룡과 송강 정철 등의 반대로 내부는 이루어지지 못했다.

한편 선조는 조선군의 무능을 탓하며 믿을 것은 명군 뿐이라 했다. 명군이 아니었으면 조선은 망했을 것이고 선조는 왕위에서 쫓겨났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마르고 닳도록 명군의 도움을 요청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처음에는 명군의 원병(援兵)을 반대하는 사람이 많았다. 이산해(李山海) 같은 사람은 명이 조선이 왜를 끌어들여 요동 땅을 회복하려 한다고 생각하고 있는데, 왜군의 침입을 알릴 수 없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유성룡(柳成龍) 등의 주장으로 사실대로 알렸다. 과연 명은 조선의 의리를 신뢰하게 되었다. 이미 류구(琉球)가 왜의 침략 사실을 통보했기 때문이다.

영의정 유성룡은 만약 빨리 명군을 보내 도와주지 않으면 조선군이 몽땅 왜군으로 바뀌어 요동으로 쳐들어갈 것이라 했다. 이는 협박인 동시에 어느 정도 사실이었다. 조선이 왜에 정복되면 조선군이 왜군으로 바뀔 것은 당연하기 때문이다. 이 시점에서 명도 왜군을 조선에 나아가 막을 것인가, 조선군과 왜군을 요동으로 끌어들여 막을 것인가를 생각해 보아야 할 판이었다. 명의 병부상서 석성(石星)은 전쟁터를 조선으로 하는 것이 낫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이여송(李如松)에게 45천군을 주어 평양에서 왜군을 격파한 것이다.

그러니 선조를 비롯한 조선의 군신들이 재조번방지은(再造藩邦之恩)을 부르짖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런데 광해군이 이들의 주장과는 달리 정묘·병자호란 때 청나라와 명나라 사이에 등거리 외교를 했다. 그리고 적자도 장자도 아닌 광해군의 위상을 지키기 위해 임해군·영창대군을 죽이고 어머니인 인목대비를 서궁(西宮)에 유폐시켰다. 이에 서인들은 광해군이 존명사대(尊明事大)를 어기고 지친에게 패륜행위를 저질렀다고 인조반정을 일으켜 정권을 차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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