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비의 개념 2 └ 성고선생의 역사이야기

송대의 사대부 개념은 려말선초에 이르러 정착되었다. 사대부층은 고려 귀족세력과 대치하는 과정에서 주자학을 이론무기로 채택했다. 그리하여 그들이 주축이 되는 왕조교체를 통해 조선의 지배층이 되었다. 사대부는 본래 유교공부를 해 국가의 관료가 되는 것이 목적이었다. 그러므로 문관 중에 는 하급관료, ‘대부는 고급관료를 의미하게 되었다. 그러나 양반의 수가 늘어나고 관직경쟁이 심해지자 과거에 급제하지 못하거나, 관직을 차지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아지게 되었다. 박지원(朴趾源)

오직 그 양반은 이름이 다단(多端)해서 독서를 하는 사람을 라 하고, 정치에 종사하 는 사람을 대부라 하며, ()이 있는 사람을 군자(君子)라 한다.”

라고 해 5품 이하의 문관관료라 하지 않고 포의(布衣)의 독서인(讀書人)이라 했고, 대부만 관료로 보았다. 그리고 과거도 보지 않고 벼슬에도 뜻을 두지 않으면서 재야 학자로 있는 사람들도 양반의 범주에 넣었다. 이들이 모두 선비였음은 말할 것도 없다.

그러나 한말 일제시대에 이르러 근대화가 진행되면서 서구사상이 들어오고, 1894년에 과거제도마저 폐지되자, 관료가 되려면 서양학문을 해야만 했다. 그리하여 선비와 관료가 완전히 분리되었다. 오히려 선비들은 구학문을 고수하며 재야학자로서 서구학문에 저항했다. 이들은 나라 잃은 지식인으로서의 책임을 통감해 신학문을 배우려 하지 않고 의병을 일으키거나 독립운동을 했다. 그리하여 이희승의 국어대사전에 선비를 학식이 있되 벼슬하지 않은 사람이라고 풀이하게 되었다.

과거에 선비들은 벼슬을 하기 위해 유학을 공부했다. 그러나 이제는 학자와 관료의 구분이 확연히 구별되자 선비는 벼슬과는 무관한 순수한 포의의 독서인으로 남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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