효종의 즉위과정 4 └ 성고선생의 역사이야기

국본(國本)이 이미 정해졌지만 속으로는 복종하지 않는 자가 반드시 있을 것이다. 저 여러 강씨들이 모두 어리석고 분수를 모르니, 그들을 먼 데로 이주시키는 것이 어떻겠는가?

- 《인조실록46, 인조 238월 갑진

김류와 이경석 등은 그들이 망령되게 행동한 일이 있기는 하나 특별히 드러난 죄악은 없으므로 함부로 죄줄 수는 없다고 했다. 그러나 인조는 흔단()이 생기기 전에 선처하는 것이라는 명목으로 강빈의 형제 네 명을 귀양보냈다. 강빈에게 이 소식은 충격이 아닐 수 없었다. 죽음의 그림자가 서서히 다가오고 있다는 생각을 떨칠 수가 없었다. 그녀는 복받치는 설움을 누를 길 없어 인조의 거실 근처로 가서 통곡해 보기도 했다. 그러나 1646(인조 24) 13일에 일어났던 전복 구이사건은 강빈을 결국 죽음으로 몰고 갔다.

인조에게 올린 전복 구이에 독약이 들었다는 사실이 발각되었다. 인조는 강빈을 지목해 강빈의 나인 다섯 명과 음식을 만든 세 명의 나인을 잡아 국문했다. 그러나 실상 인조가 그 이전부터 이미 궁중 사람들에게 감히 강씨와 말하는 자는 죄를 주겠다.”고 경계했기 때문에 왕래가 끊긴 지 오래였다. 음식에 독을 넣는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것은 인조와 조소용의 모함이었다.

이 사건은 끝내 실상이 밝혀지지 않았다. 그러나 인조는 이후에도 계속 강빈이 독을 넣었다고 의심해 강경하게 법으로 처벌하고자 했다. 인조는 23일 김류, 이경석, 최명길, 김육, 김자점 등 대신들을 불러 이렇게 말했다.

강빈이 심양에 있을 때 은밀히 왕위를 바꾸려고 도모하면서 미리 홍금적의(紅錦翟衣, 붉은 비단으로 만든 왕후의 옷)를 만들어 놓고 내전의 칭호를 외람되이 사용했다. 또 지난해 가을에는 분한 마음을 이기지 못해 큰소리로 발악하고 사람을 보내 문안하는 예까지도 폐한 지가 이미 여러 날이 되었다. 이런 짓도 하는데 어떤 짓인들 못하겠는가. 군부를 해치고자 하는 자는 천지의 사이에서 하루도 목숨을 부지하게 할 수 없으니, 해당 부서에 명해 처벌하도록 하라.

- 《인조실록47, 인조 242월 경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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