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구려와 당의 전쟁 └ 역사일반

상황이 악화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고립된 안시성의 저항은 완강했다. 그 바람에 한동안 포위공격의 성과가 나타나지 않았다. 당의 장군들은 동남쪽에 있는 오골성(烏骨城)을 먼저 치고, 곧바로 평양을 공격하자고 건의하기도 했다. 그러나 장손무기(長孫無忌)가 오골성을 공격할 때 후방에서 안시성의 고구려군이 역공할 가능성이 있다며 반대하자, 이를 받아들여 안시성 공격을 계속시켰다.

그러나 이후 계속된 치열한 공격에도 불구하고 성을 함락시키지 못했다. 심지어 성을 공략하기 위해, 성 동남쪽에 성과 같은 높이로 쌓아 올리려던 흙산마저 거의 완성될 즈음에 갑자기 무너져 버렸다. 이때 흙산과 함께 성벽도 무너지자 고구려군은 재빨리 성벽 밖으로 나와 이를 점령하고, 나무를 쌓아 불을 질러 당군의 접근을 막았다.

당 태종은 책임자의 목을 베고 싸움을 독려하며 3일간 맹렬한 공격을 퍼부었으나 끝내 실패했다. 이 실패는 치명적이었다. 군량이 떨어져 갔을 뿐 아니라, 일찍 찾아온 추위에 견디기도 어려워진 당군은 철수에 나섰다.

이 과정에서 당은 상당한 희생을 치렀다. 당군이 굳이 길이 험한 요택(遼澤)을 통과하면서 많은 희생을 감수한 이유를 두고 논란이 있다. 일부에서는 고구려군의 추격을 의식한 것이며, 당군이 치른 희생 또한 추위 때문이라기보다 고구려군과의 전투 때문이라고 해석하기도 한다. 심지어 남아 있는 기록이 당의 참패를 감추기 위해 왜곡되었다는 주장도 있다. 그리고 이 때 선전한 안시성주가 양만춘(楊萬春)이라는 기록이 남아 있으나, 확인되지 않는 상태다.

이후에도 당 태종은 여러차례 고구려를 침공하도록 했으나 서로에게 치명타를 주지는 못했다. 계속된 전쟁으로 고구려나 당이나 피해만 입었을 뿐이다. 당 태종 자신도 결국 고구려 침공 이후 얻은 병이 원인이 되어 사망했다. 그와 함께 고구려와의 전쟁을 중지하라는 명령이 내려졌다.

 


덧글

  • 솔까역사 2013/07/18 07:06 # 답글

    고려=김조, 신라=한국, 당=미국이라는 인상이 대중들에게 심어져 있습니다. 김조는 정치적으로 그 덕을 많이 보고 있죠.
    그런데 신라를 비난하고 고려를 찬양하면서도 미군철수는 반대하는 현상은 정말 불가사의한 일입니다.
  • ㄴㅇㄹ 2013/07/18 14:39 # 삭제

    야 블레이드님 블로그까지와서 임나일본부, 미군철수, 동북공정 추종하는 짓거리 하지마.
    이게 차단안하고 가만 놔두니 아주 끝이 없네.
  • 안시성 2013/07/18 16:28 # 삭제 답글

    안시성 근처에 토성이 있었는데 토성 높이가 50~100m라고 생각됩니다.
    http://www.koleco.kr/board/bbs/board.php?bo_table=m21&wr_id=10
    석궁을 발사해 91m 거리에서 당시의 금속제 갑옷을 관통할 수 있었다.

    661년 당은 소정방을 시켜 평양성을 포위 했는데 연개소문은 사수에서 방효태군을 섬멸 시키려고
    강 건너편에 발석거와 철궁부대를 배치 시켰다.

    철궁이 석궁보다 강력 한것 같으니까 철궁이 100m이상 떨어진 갑옷을 관통할수 있다고 봅니다.
    안시성에서 고구려 궁사가 활을 쏘면 100m이상 떨어진 갑옷을 관통할수 있을테니까
    당나라군대는 100m 밖에서 토성을 쌓았을것 같습니다.

    http://book.naver.com/bookdb/book_detail.nhn?bid=6889200
    남성 퇴화 보고서 진화를 멈춘 수컷의 비밀
    피터 매캘리스터 저 |이은정 역 |21세기북스 |2012.04.19
    원제 Manthropology페이지 328|ISBN 9788950936679|판형 A5, 148*210mm|책정보더보기 도서관 소장 정보 국립중앙도서관
    1907년 르완다를 찾은 독일 인류학자 아돌프 프리드리히는 현지 투치족(族) 평범한 남성들이 1.9m 이상 높이뛰기를 하는 것을 발견했다. 선수급은 2.52m 높이까지도 넘었다.
    하지만 원나라 황실 근위대의 기준은 90㎞를 6시간 이내에 달려야 했다. 카르타고와의 전쟁에서 로마 병사들은 하루 평균 75㎞를 달렸고, 알렉산더 대왕의 부대도 페르시아의 다리우스왕을 추격하며 11일간 하루 58~84㎞를 달렸다.
    1686년 와사 다이하치로는 하루 동안 총1만3053회 쏴서 8133번 적중시켰다는 기록이 있다.
    일주일에 80시간 이상 활쏘기 훈련을 했으며(몽골 궁수)
    고구려 병사들이 활쏘기를 하루에 1만회는 했을것이라 생각됩니다.
    로마 병사들이 하루 75km를 달렸으니 40~45km 황산벌~기벌포도 당일치기 방어가 가능하죠.
  • 구경꾼 2013/07/21 04:58 # 삭제

    으이구~~~안시성 병신 삽질은 지치지도 않네

    당나라군대는 100m 밖에서 토성을 쌓았을것 같다구?
    나중에 성이 무너져서 성벽을 덮었다는 건 계산에 넣었냐?
    뭐가 진실인지는 모르지만 니 계산대로 해주께
    토성높이 50~100m, 성벽과 토성거리 100미터 <= 성벽 덮는게 가능하냐?
    제발 좀 알지도 못하고 멋대로 떠들지 마라
    모르면 좀 닥쳐라 블로그 난장판 만들지 말고
  • 솔까역사 2013/07/18 22:30 # 답글

    전쟁이 끝난 후 연개소문은 미녀 두 명을 바치며 사죄합니다. 그러나 당태종은 그들이 가족을 떠나 사는 것이 불쌍하다며 받지않고 돌려보냅니다. 당태종도 인품이 상당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 ㄴㅇㄹ 2013/07/19 14:57 # 삭제

    야, 전쟁에서 이긴 연개소문이 미쳤다고 사죄하냐?
    제발 헛소리 좀 그만 그만해라.
    지치치도 않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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