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현세자와 인조 └ 성고선생의 역사이야기

소현세자는 조선과 청의 원만한 관계를 위해 심양의 고관들과 친분을 맺었다. 또 뇌물 외교에 필요한 자금을 마련하고자 영리에도 관심을 가졌다. 심양 관소의 문이 마치 시장과도 같았다는 표현이 이 사실을 단적으로 말해 준다. 그러나 바로 이것이 문제가 되었다. 당시 심관의 일상적인 경비나 교제에 필요한 물자들은 본국에서 부담하고 있었다. 조선에서는 소현세자와 강빈의 심양 생활이 사치와 낭비 일색으로 비춰지고 있었다.

 

세자는 자질이 영민하고 총명했으나 기국과 도량을 넓지 못했다. 심양에 있은 지 이미 오래되어서는 모든 행동을 일제 청나라 사람이 하라는 대로만 따라서 했다. 학문을 강론하는 일은 일체 폐지하고 오직 화리(貨利)만을 일삼아 크게 인망을 잃었다.(인조실록 46, 234월 무인)

 

인조는 심양에서 세자의 과도한 화리가 단순히 외교에 필요한 비용을 마련하기 위한 것이라고만 생각하지 않았다. 오히려 소현세자가 역위를 도모하기 위해 자금을 마련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실제로 당시 인조는 심관에서 청으로 부추겨 조선 왕을 세자로 교체하고 인조를 심양으로 들어오게 한다는 공작설을 전해 들은 바 있었다. 인조가 그 말을 한 귀로 흘려버리지 못한 것은 뒤이어 일어난 심기원의 역모 사건에서 세자 추대설이 등장했기 때문이다. 위기감을 느끼기 시작한 인조는 심복 내시들을 심관에 파견해 그 곳의 동태를 감시하기 까지 했다.

소현세자는 심양에 있으면서 두 번 조선에 다녀갔다. 특히 두 번째 방문은 강빈의 아버지인 강석기가 전년 6월에 사망했기 때문에 강빈을 동반한 행차였다. 그런데 부친상을 당해 8년 만에 조국으로 돌아온 강빈에게 인조는 냉혹할 만큼 각박하게 대했다. 인조는 강빈이 아버지의 빈소에 가서 곡하는 것조차 허락하지 않았다. 그 때문에 인조와 소현세자 내외의 갈등이 더욱 심화되었다.

 


덧글

  • 하늘여우 2013/06/22 20:20 # 답글

    실록은 번역된게 있는건가요?
  • 블레이드 2013/06/23 08:19 #

    당연. 현재 온라인 서비스도 하는중.
댓글 입력 영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