숙종의 원자정호와 송시열의 반기 └ 성고선생의 역사이야기

숙종은 왕자가 출생한 지 채 석 달도 안 되어 왕자의 명호에 관해 구언했다. 비록 후궁의 소생이라 하더라고 일단 명호를 정하면 원자가 된다. 따라서 그 후에는 설사 왕비가 왕자를 낳더라도 그와 상관없이 명호를 정했던 후궁 소생 왕자가 세자로까지 책봉된다. 이렇듯 대계를 결정하는 중요한 사안이므로 신중함이 요구되었다. 그러나 숙종은 특유의 성급함을 내보였다.

 

국본을 정하지 못해 민심이 매인 곳이 없으니, 지금 새로 태어난 왕자를 원자로서의 명호를 정하려 한다. 만약 선뜻 결단하지 않고 머뭇거리며 관망만 하고 감히 이의를 제기하는 자가 있다면 벼슬을 바치고 물러가라(숙종실록20, 151월 무인)

 

너무도 뜻밖의 과격한 말에 신하들은 모두 할 말을 잃었다. 입대한 영의정 김수항과 남용익(南龍翼) 유상운(柳尙運) 윤지완(尹趾完) 심재 목임일(睦林一) 등은 한 목소리로 이렇게 말했다.

 

중궁(中宮)께서 춘추가 지금 한창이시고 다른 날의 일을 알 수 없으니, 갑자기 이런 일을 의논하는 것은 너무 급하지 않겠습니까? 다른 날에 중궁께서 생남의 경사가 없으면 국본은 자연히 정해질 것입니다. 몇 년을 기다렸다가 다시 의논하소서.

 

그러나 숙종은 세자가 정해지지 않으면 민심이 안정되지 못한다는 이유로 대신들의 논의를 일축시켜 버렸다. 논의가 나온 지 하루만에 숙종의 자의로 대계가 정해졌다. 가장 강력하게 반대한 남용익은 중죄로 다스려졌다. 모든 일이 5일 후 원자의 정호를 종묘사직에 고하는 것으로 일단락되었다.

숙종이 거의 30살이 되도록 후사가 없다가 이제야 비로소 왕자를 두었으니 그 기쁨을 이기지 못하는 것은 당연했다. 그러나 숙종과 중전의 나이가 아직 한창인데다가 왕자가 탄생한 지 겨우 두어 달밖에 안 되었으므로 서두를 이유는 전혀 없었다. 서인들의 빗발치는 반대를 무릅쓰고 장씨 소생의 왕자를 원자로 정한다는 것은 왕권을 과시하는 사건인 동시에 서인의 정치 생명에 적신호가 왔음을 의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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