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적이 정변을 일으켰다? 5 └ 성고선생의 역사이야기

암까마귀와 수까마귀를 가리기 어려운 것과 같고, 솥 밑과 가마 밑이 서로를 흉보는 것과 같을 뿐이다.

이 때 청남에 일침을 가하는 종실 영평정(永平亭)의 상소가 있었다.

당론이 반드시 나라를 망치게 할 것이니, 앞에서는 송시열 송준길이 그르쳤으며 뒤에서는 허목 윤휴가 그르칩니다.(위의 책)

허목 윤휴는 망국의 근원으로 지목된 이상 조정에 남을 명분이 없었다. 숙종이 영평정의 파면을 명하고 목내선은 삭탈 관직을 주장했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무마책에 지나지 않았다. 두 사람은 만류하는 유생들의 손을 뿌리치고 조정을 떠났다. 1676(숙종2)4월의 일이었다.

그로부터 두 달 뒤 윤휴는 만언소를 올려 허적 권대운을 공격했다. 윤휴가 누구인가? 일찍이 그는 다음과 같이 주장하며 청남을 자처한 인물이었다.

 

현종조에 청현직을 지낸 자는 비록 색목이 같을지라도 등용해서는 안 된다.(숙종실록4, 16월 신유)

더욱이 북벌 병권 문제로 인해 허적과 마찰을 빚는 과정에서 불화는 더욱 깊어졌다. 윤휴의 상소를 접한 숙종은 이번에도 허적을 위로하고 탁남을 두둔했다. 숙종은 정국의 원만한 운영을 위해서는 청남보다는 탁남을 적임자로 여기고 있었다. 더욱이 탁남은 김석주와도 연견되어 있어 더욱 신뢰할 수 있었다.

청탁의 대립으로 정국은 혼전을 거듭하였지만, 주도권은 여전히 탁남에게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청탁은 3북 문제와 병권 문제를 놓고 일대 격전을 벌였다. 척신 김석주가 전면에 부상한 것도 바로 이 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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