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對新羅 군사적 위협의 허구 6 부담스런 이야기

671년 신라에 의해 웅진도독부에서 밀려난 唐將 郭務悰과 그 휘하에 있던 2천명이 47척의 배에 실려 들어오자 일본이 그들에게 등을 제공한 사실이 있다하여 이 사건이 신라에 충격으로 받아들여졌다고 본 점도 검토의 여지가 있다. 이 사건을 중시한 이유는 당과 일본의 동맹관계가 성립되어 일본이 당군에 보급을 한다면 신라입장에서 치명적일 수 있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이 기록은 일본으로 피신한 당의 장군에게 일본측이 각종 편의와 군수품을 제공했다는 기록에 불과하다. 다시 말하자면 당 측에서 적극적으로 일본을 끌어들이려 한 흔적이 없다. 그렇다면 이는 일본측이 일방적인 선물공세로 당과의 관계 개선을 노렸다는 근거를 될 수 있을 지언정, 당과 일본의 동맹관계가 성립되어 신라를 위협할 수 있었다는 근거가 되기도 어렵다.

이렇게 보면 문무왕이 세계적 대국 당과의 대치 상황에서 통일된 신라의 존속을 연장시키려 일본과의 관계를 개선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을 가지고 있었다는 시각도 재검토할 필요가 있을 듯하다. 문무왕의 강박관념을 증명하기 위해 이용한 자료는 다음과 같다.

 

왕은 나라를 다스린 지 21년 만인 永隆 2(681)에 죽으면서 동해 가운데 큰 바위 위에 장사하라고 유언하였다. 왕은 평상시 지의법사에게 말하기를 내가 죽은 뒤에는 원컨대 나라를 수호하는 큰 이 되어 불교를 받들고 국가를 보위하리라. (삼국유사 권 2 문무왕)

 


덧글

  • 솔까역사 2013/05/01 07:23 # 답글

    일본은 당과 신라에 의해 망한 백제를 도왔고 이제 당마저 한반도에서 신라에게 밀려나는 상황이라면 일본과 당은 이해관계가 일치하네요.
    일본과 당의 동맹이 성립하지 않은게 오히려 이상한 상황입니다.
    이것은 신라의 기막힌 외교술의 결과로 볼 수 있습니다.
    일본을 구슬리는 과정에서 저자세를 취하는 것은 불가피했을 겁니다.

    동해는 신라와 일본의 경계입니다.
    거기에 수장되어 나라를 지키겠다고 했다면 그 대상은 당연히 일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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