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적이 정변을 일으켰다? 1 └ 성고선생의 역사이야기

어제 드라마 장옥정에서 남인 거두 허적이 정변을 일으켜 숙종을 제거하려다 실패하는 장면이 나왔다.
물론 실제 역사와는 아무 상관이 없다. 실제 진행된 흐름은 이렇다.

1674(현종 15) 715일에 복제 개정이 단행되고, 그로부터 약 한달 뒤인 818일에 현종이 죽고 14세의 어린 왕 숙종이 즉위했다. 숙종은 현종과는 달리 과단성 있는 성격의 소유자였다. 그는 세자 시절부터 송시열에 대해 모종의 적개심을 가지고 있었다. 숙종의 출생 당시 다른 사람들은 모두 축하하러 왔지만, 유독 송시열만의 도중에 병이 나서 돌아갔다고 한다. 세간에서는 이를 두고 숙종이 효종 상중에 잉태되었기 때문에 송시열이 의도적으로 오지 않은 것이라고 했다. 숙종의 어머니 역시 그렇게 여겼고, 분한 나머지 숙종에게 그런 사실을 말해 주었다고 한다.

숙종과 김석주·김우명, 그리고 정국의 변화를 꾀하던 남인들은 서인을 완전히 축출하기 위해 명분상 예론을 이용했다. 숙종이 즉위한 그 해 9, 왕이 현종의 묘지문을 송시열에게 위촉하면서부터 사단은 벌어지기 시작했다. 진주 유생 곽세건이 예를 잘못 정한 송시열에게 현종의 묘지문을 짓게 해서는 안 된다는 내용의 상소를 올린 것이다.

예를 잘못 논한 영의정 김수홍도 처벌되었는데, (효종을 서자라 해도 좋다는) 예론의 원인을 제공한 송시열을 그대로 둘 수 없습니다. 현종의 묘지문은 달리 적당한 사람에게 짓게 해야 합니다.(숙종실록 1, 즉위년 9월 병술)

  곽세건의 상소가 있자, 송시열은 황황히 수원으로 내려가 버렸고, 서인들은 벌떼처럼 들고 일어나 곽세건을 엄벌에 처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숙종은 처음에는 곽세건을 유벌(儒罰)인 정거(停擧, 과거 시험 응시 자격의 박탈)에 처하도록 했다. 그러나 남인으로 영의정이었던 허적의 말에 따라 그마저 풀어 주었다.

현종의 묘지문은 김석주가 짓는 것으로 결론을 내렸다. 뿐만 아니라 대제학 이단하(李端夏)가 짓기로 한 현종의 행장(行狀)에도 송시열이 예를 잘못 정했다誤定禮고 분명히 기록하라고 지시했다. 이단하는 스승인 송시열을 궁지에 몰아넣는 일을 차마 제 손으로 할 수 없었다. 그는 다른 사람에게 행장을 짓게 할 것을 극력 간청했다. 그러나 숙종의 고집을 꺾을 수 없어, 결국 이단하 자신의 붓끝으로 송시열이 예를 잘못 정했다는 기록을 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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