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백이 정말 전황을 비관했을까? 2 └ 역사일반

오히려 이 말은 중국 쪽 사서(史書)인 구당서 와 신당서 에도 나온다. 있지도 않은 이야기가 계열이 완전히 다른 역사에 수록되기는 어렵다. 그렇기 때문에 문사의 말을 의심할 필요는 없다는 것이다.

이렇게 중요한 원인이 된 말은 여러 사람이 듣고 빠르게 전해지기 마련이다. 여기서 왕자 문사의 판단과는 완전히 상반된 계백의 판단이 비교되어야 한다. 가족을 미리 죽일 만큼 전황을 비관했던 계백의 판단이 실제로 있었던 것인지 의심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우선 문사를 비롯한 백제 왕족들이 근거 없는 판단을 할 리가 없다. 나중에 반역에 연관되어 처벌당하는 사태를 피하려 선택한 길이 나당연합군에 망명하는 일이다. 일단 그들의 포로가 되는 셈이다. 사비성이 함락될 것 같이 급박한 상황이었다면, 오히려 나중에 나당연합군이 포위를 풀고 물러간 이후의 사태가 걱정스러워 자기 발로 포로가 되는 길을 선택했을 리가 없는 것이다.

의자왕이 미리 웅진성으로 피신한 것도 마찬가지다. 만약 사비성이 함락된다 하더라도 어떻게든 이후 수습을 도모해보려는 의도가 있었으니, 최고통치자가 수도방위의 책임을 둘째 아들에게 떠넘기는 무리를 감수하고 피신했을 것이다.

그렇다면 이게 무슨 뜻이 될까? 적어도 나당연합군의 침공에 대항했던 최고 수뇌부인, 의자왕과 왕족들은 이번 침공 자체로 백제가 망한다는 생각을 하지 않았다는 얘기다.

그런데도 계백만큼은 심하게 비관을 했다? 뭔가 이상하다. 계백은 당장 최전방으로 군대를 이끌고 나아가 전투를 치러야 할 야전사령관이었다. 실제로 부대를 지휘하는 야전사령관이라면, 최고 수뇌부 못지않게 전황을 정확하게 파악할 수 있는 위치에 있다. 오히려 수뇌부가 야전사령관의 판단과 보고를 통해 전황을 파악하게 되는 게 보통이다.

그런데 그런 입장에 있는 야전사령관이 수뇌부인 왕족과 다르게 전황을 비관했다는 얘기다. 당장 병력을 이끌고 전투를 치러야 할 야전사령관이 기본적인 상황도 읽어내지 못해 쓸데없는 비관을 했다는 뜻이 된다. 과연 계백이 그런 정도의 인물밖에 못 되었을까? 그렇다고 하기는 곤란할 것 같다.

 


덧글

  • 솔까역사 2013/04/28 08:31 # 답글

    전세는 전체적인 병력규모, 장비, 훈련정도, 보급 등으로 판단해야 하지 않을까요?
    초강대국 당나라와 신라의 연합군인데 패전을 예상하는 것은 지극히 상식적인 일입니다.
    결과도 계백의 예상대로 되었고요.
    얼마전 패망직전의 일본 수뇌부 회의기록을 보았는데 가관이더군요.
    전세와는 전혀 따로 놀더군요.
    인물들의 발언에 너무 치중할 필요가 없습니다.
  • 학자맞나? 2013/04/28 20:14 # 삭제 답글

    이게 의자왕을 고백하다에 나오는 내용인가?
    그렇다면 사료도 제대로 안보고 소설 써서 책 팔아먹었네
    이 내용 그대로 학계에 논문으로 발표하면 박살날것임
    전체논지가 영양가 없는 음모론이란 건 다 알거고
    군데군데 서술도 틀렸음

    일단 틀린 것 몇가지
    1. 중국기록과 삼국사기 기록의 출처가 다르다는 건 블박사가 모르고 하는 소리임.(한문 읽을 줄 알고 이분야 공부 조금만 하면 다 아는데.....그래서 본인 닉네임이 이모양임)
    2. 문사는 왕자가 아니라 왕손(이 정도야 실수로 칠 수 있겠다)
    3. 의자왕이 도망가면서 사비성 방어책임을 둘째아들 태(太)에게 맡긴 것이 아니다. 내용상 문사에게 맡겼을 가능성이 높은데, 태가 군사를 이끌고 군권을 빼앗은 것이다. 그래서 문사가 에라 모르겠다 하고 당군에 항복했다


    마지막으로 결정적으로 이 내용 전체가 음모론이며 역사왜곡이라는 증거

    1. 나당연합군이 몰려 왔을 때 좌평 의직은 당군 상륙 전에 막을 것을, 흥수는 백강과 탄현을 막을 것을 제안했다.
    2. 흥수에게 물어보러 갔다오고 논의하던 중에 나당군이 백강과 탄현을 넘었다는 소식을 듣고 계백을 시켜 결사대 5천 명을 거느리고 황산으로 가서 신라 군사와 싸우게 하였다
    3. 황산벌에서 패해 계백이 죽고, 웅진 어귀 전투에서도 크게 패하고, 진도성 30리 밖의 전투에서도 패하여 1만이 죽고 당군이 성으로 육박하였다.
    4. 의자왕은 패망을 면할 수 없음을 알고 탄식하며 말했다. "성충의 말을 듣지 않다가 이 지경에 이르게 된 것이 후회스럽구나."
    5. 마침내 의자왕은 태자와 함께 북쪽 변경으로 달아났다.
    6. 소 정방이 성을 포위하자 왕의 둘째 아들 태가 스스로(스스로가 중요!!) 왕이 되어 군사를 거느리고 굳게 지켰다.
    7 . 문사가 성을 내려와 항복했다

    삼국사기 백제본기를 순서대로 나열하면 이렇다
    문사 등장은 6번과 7번 사이인데, 문사가 전황을 비관하지 않았다고?
    역사왜곡 작작해라

    사료는 안보고 영화나 드라마를 열심히 보고
    전쟁을 스타크래프트 게임 하듯이 여기니 이런 헛소리를 하지
  • 블레이드 2013/04/29 06:36 #

    지 편한 것만 오려붙여 놓고 발악이네. 좋을대로 생각하세요. 그렇게 자신 있으면 이런데서 비로그인으로 떠들지 말고 한 번 나서보던가.
  • 학자맞나 2013/04/29 13:15 # 삭제

    뭐라고 편한대로 오려 붙였다고?
    그럼 삼국사기를 통째로 긁어서 올려주까?
    그럼 블박사 편한대로 함 오려붙여봐라
    그럼 믿어주께

    블박사 주장은 사료를 잘못 봤거나 아예 사료에 없는 내용이잖아
    내 이럴 줄 알았다
    꼼짝없이 틀렸으니 갑자기 딴소리 할 줄 알았다

    오케이!
    블레이드는 학자가 아니라 소설가로 결론
    학자라면 앞으로 공부 좀 더하고 책 쓰시길

    그리고 불리하면 거짓말 하는 버릇도 좀 고치시길

    비로그인인 이유는 아이디를 만들지 않았기 때문인데
    원한다면 조만간 블로그 하나 만들어서
    블박사 책 의자왕을 고백하다가 역사왜곡에 사기임을 밝혀 드리지
  • 하긴 2013/04/29 07:30 # 삭제 답글

    지금도 비슷하지요. 대한민국 군은 북한과의 전쟁을 전력부족으로 비관적으로 보는데

    자신감 넘치는건 지도층 들뿐인듯..^^::
  • 하긴 2013/04/29 07:33 # 삭제 답글

    그냥 수뇌부가 바보인겁니다.
  • 하긴 2013/04/29 07:40 # 삭제 답글

    무슨 놈의 정치인들이 장군보다 전쟁을 더 잘안다라니깐요.

    그런 분들에게는 계백도 비관적인 말이나 하는 역적이겠죠.

    백제가 승리한다라는 말이나 좋아할테고...
  • 블레이드 2013/04/30 06:53 #

    그러니까 이 비로그인들은 태가 문사에게 지휘권을 뺏어놓고도 문사가 멋대로 돌아다니게 놔두었다고 믿는 거네. 이들이 정변 일으키면 부디 그렇게 살기를... 하긴 이런 데서 덧글질이나 하는 인간들이 오죽하겠냐만.
  • 블레이드 2013/04/30 06:55 #

    정치인들은 전쟁을 잘 모르니 당장 포위를 당해 자기 운명이 오락가락하는 상태에서도 멋대로 판단을 하겠지? 하긴??? 앞으로 그렇게 살면 되겠네.
  • 역사 초보 2013/04/29 14:32 # 삭제 답글

    백제와 신라가 중국에 있었다는 포스팅들이 많은데요. 자료를 찾다보니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에 나온 천문기록을 역추적하면 중국에서 관측된 것이라고 하더라구요. ( 참고 ; http://www.wnews.kr/news/view.html?section=2&category=11&no=1869 )

    기사를 보니 오래전 이야기이긴 한데...요즘 역사학계에서는 어떤 평가를 내리고 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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