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對新羅 군사적 위협의 허구 5 부담스런 이야기

이러한 서술태도를 고려하면 백제 파병을 전후하여 신라정벌 기사가 나타났다고 해서 이를 액면 그대로 인정할 수 없다는 것이다. 위 기록 역시 三國史記 등에 전혀 대응기사가 없는 점을 고려하면 실제의 정벌 의도나 사실을 기록하고 있다고 볼 필요가 없다.

또 반대 정황이 나타나는 기록도 있다.

 용삭(龍朔) 3년 계해(문무왕 3: 663)에 백제의 여러 성이 몰래 부흥을 꾀하여 그 장수들이 두솔성(豆率城)에 근거하며 왜에 군사를 청하여 후원을 삼으니 대왕이 친히 유신, 인문, 천존(天存), 죽지(竹旨) 등 장군을 인솔하고 717일에 정벌에 나서 웅진주(熊津州)에 이르러 주둔하고 있던 유인원과 군사를 합쳐 813일에 두솔성(豆率城)에 이르렀다. 백제인과 왜인이 진영에서 나오자 아군이 힘껏 싸워 크게 이겼다. 백제와 왜인이 모두 항복하였다. 대왕이 왜인들에게 말하였다.

우리 나라와 너희 나라는 바다를 사이에 두고 강역이 나뉘어 있어 일찍이 전쟁한 일이 없고 단지 우호관계를 맺어 사신을 서로 교환하여 왔는데 무슨 까닭으로 금일 백제와 죄악을 함께 하여 우리 나라를 도모하는가? 지금 너희 군졸은 나의 손아귀 속에 들어 있으나 차마 죽이지 않겠다. 너희는 돌아가 너희의 국왕에게 전하라! 그리고 너희는 가고 싶은 대로 가라!” ( 三國史記 김유신 열전 )

 이 기사의 우리 나라와 너희 나라는 바다를 사이에 두고 강역이 나뉘어 있어 일찍이 전쟁한 일이 없고 단지 우호관계를 맺어 사신을 서로 교환하여 왔는데 무슨 까닭으로 금일 백제와 죄악을 함께 하여 우리 나라를 도모하는가?’라는 부분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여기에 나타난 대로라면 신라와 왜는 상당기간 전쟁 없이 우호관계를 유지하고 있었다는 의미가 된다.

물론 이 역시 역사적 사실의 반영이라기 보다 왜와의 충돌을 피하기 위한 명분용 관념이라고 볼 여지도 있다. 하지만 이 기사는 6세기 이래 신라와 왜의 충돌기사가 없어졌던 三國史記 의 흐름과 일치한다. 따라서 이 기사를 굳이 역사적 사실과 상반되는 관념으로 볼 필요는 없다. 최소한 조작의 흔적이 뚜렷한 日本書紀 기사 보다는 신빙성을 가질 수 있다.

이러한 점들을 볼 때, 통일을 전후한 시기 일본의 한반도 정벌 기록을 역사적 사실로 인정하는 데에는 무리가 따른다. 무리가 따르는 기록대로 일본이 신라를 실제로 위협했다고 보기보다는 이 침략 기록은 일본측의 일방적인 명분이나 관념의 표출에 불과하다고 보는 편이 타당하다고 생각된다.

 


덧글

  • 솔까역사 2013/04/26 08:33 # 답글

    이 부분은 공감이 가는군요.
    백제를 지원하기는 했지만 신라를 직접 공격하지는 않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일본서기의 신라공격기록은 걸핏하면 '신라를 쳤다'고 하는 일본서기의 관용구처럼 볼 수 있죠.
    그런데 의문나는 점은 신라가 백제 고려 그리고 당니라와ㅈㅓㄴ쟁을 할 때 왜 일본은 신라의 배후를 공격하지 않았을까요?
  • 솔까역사 2013/04/26 09:22 # 답글

    일본서기의 기록대로 왜가 신라를 직접 공격했다면 한국통일이 어려웠지 않나 생각됩니다.
    왜가 신라를 직접 공격하지 않은 이유는 백제를 지원하느라 여력이 없었다고 볼 수도 있고 신라의 외교적 수완의 결과로 볼 수도 있고 왜가 자신들에게까지 불똥이 튈 것을 염려했다고도 볼 수 있겠습니다.
  • 솔까역사 2013/04/26 09:43 # 답글

    좀 더 생각해 보면 신라와 당나라가 동맹관계일 때와 동맹이 깨졌을 때 동북아 역학관계가 크게 달랐을거 같습니다.
    후자때는 신라가 어려운 처지라 일본에 저자세외교를 취할 수 밖에 없었을지도 모릅니다.
  • ㄴㅇㄹ 2013/04/26 15:04 # 삭제

    야 좀 조용해.
  • 솔까역사 2013/04/26 15:17 # 답글

    그러나 당나라와의 관계가 회복되고 나서는 신라가 아쉬울 게 없었을 겁니다.
    과거와 달리 한국통일 이후는 일본도 신라를 치기 부담스러웠을 겁니다.
    그래서 당나라가 내란으로 약화되었을 때나 발해를 끌어들이거나 해서 신라를 치려했을 수는 있겠습니다.
    한국은 중국의 정세변화에 민감한데 당나라가 망할때 신라도 망하죠.
  • 솔까역사 2013/04/26 15:54 # 답글

    나라마다 다 기복이 있습니다.
    고려도 동북아의 패권을 장악했을 때가 있는가 하면 외국사신에게 왕이 구타당할 때도 있었죠.
    한국통일 이후의 신라-일본의 관계도 일정하지 않았을 겁니다.
    문제가 되는 논문은 어느 시기를 말하는지 모르겠지만 신라가 저자세외교를 했다고 하더라도 처음부터 끝까지 그런 것은 아닐겁니다.
  • ㄴㅇㄹ 2013/04/26 16:02 # 삭제

    뭘 왕이 사신에게 구타당해?
    그 말도 안되는 뻥을 사실이라고 믿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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