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다면 가족을 죽이면서 계백이 했다는 말은 도대체 어떻게 해서 남은 것일까? 여기서 또 다른 가능성을 하나 제시해 볼 수 있다. 삼국사기 (사실상 삼국사기 편찬자가 참조햇던 원사료까지 해야겠지만)에서 설정한 계백의 컨셉을 감안해보자. 망해가는 나라에 끝까지 충성을 바치며 질게 뻔한 전장으로 향했던 비운의 장군. 이렇게 정리하면 큰 문제가 없을 것 같다.
문제는 여기서부터다. 계백의 케릭터를 이렇게 설정한 이상, 그의 행동도 케릭터에 걸맞게 쓰려는 심리가 작용할 수 있다. 그러려면 계백의 행동에 뭔가 극적인 요소를 부여하려 하기 쉽다. 질게 뻔한 전장으로 나아가서 그냥 전사하고 말았다는 스토리로 그친다면 열전에 등장하는 인물의 활약치고는 뭔가 밋밋하다.
그러니 케릭터를 강조하기 위해서는 가망 없는 전장에 나서는 장군의 심정을 보여줄 만한 에피소드가 스토리 전개상 절실하다. 이럴 때, ‘필요한 내용이 없으면 만들어 넣자’는 심리가 작용하기 십상이다. 드라마 작가들이 흔히 쓰는 수법이 바로 이런 것이다.
물론 드라마도 아닌 역사서에, 그것도 술이부작을 원칙으로 강조하는 바람에 간략하게 사실만 써대는 경향을 가지고 있는 삼국사기 에 이렇게 없는 말을 만들어 넣기야 했겠느냐는 생각을 할 법도 하다. 삼국사기 라는 역사서만 떼어놓고 생각하면 당연한 반응이다.
그러나 이 경우는 기록이 남아 있는 삼국사기 자체보다, 삼국사기 를 편찬하는 과정에서 편찬자들이 참고했던 원자료에서 생겨났을 가능성이 크다. 당연한 이야기를 한번 더 강조하자면, 금방 망해버린 백제에서 계백에 대한 기록을 공식적으로 편찬한 역사에 남겨 놓았을 리는 없다.
그렇다면 삼국사기 열전에 계백에 대한 기록이 남게 된 원인은 하나밖에 없다. 신라 사람들이 적장(敵將)이었던 계백에 대하여 자기들이 알고 있거나 백제 출신들에게서 들은 는 이야기들을 주워 모았고, 이게 남아 삼국사기 편찬자들에게 전해졌던 것이다.
그러니 이 과정에서 ‘떡은 갈수록 떼이고, 말은 갈수록 보태진다’는 속담처럼 계백이 했다는 말이 이때 슬쩍 보태져서 들어가는 게 그리 이상한 일은 아니다. 그렇게 남은 기록은 삼국사기 라는 역사서의 성향과는 완전히 별개일 수 있다. 물론 아무리 원칙을 강조한다 하더라도 실제로 원칙대로 했다는 보장도 없으니, 삼국사기 편찬 때에 삽입되었을 가능성이 적더라도 완전히 배제할 필요는 없겠다.
어쨌든 삼국사기 열전에 수록시키는데, 인색했던 백제 사람 중, 계백에게만 예외를 두었다는 점에 대해서는 이미 언급했다. 한마디로 말해서 계백의 충신·열사의 표상으로 내세워진 인물이다.
이런 의도로 계백을 내세웠다면 그 과정에서 업적이나 행적에 말이 보태지기 십상이다. 이렇기 때문에 백제가 망했다는 결과를 알고 있는 후대 사람들이 계백의 열전을 정리하면서 없는 대사를 집어넣었을 가능성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는 것이다.






덧글
하지만 남긴 말은 나중에 살이 붙었을 가능성이 있겠죠.
왕망이 고려왕을 유인하여 죽인 사실을 고려장수로 둔갑시킨 것은 중국사료로 걸러낼 수 있지만 그런 근거가 없다면 기록을 이길수는 없다고 생각됩니다.
2013/04/23 18:08 #
비공개 답글입니다.血指汗顔 2013/04/23 18:08 #
역사를 의심하는 이유는 "역사가 전하는 것이 모두 사실이 아니기 때문"이지.
왕망이 구려후 추를 죽였는지 장수 연비를 죽였는지도 어느 한쪽의 기록만 봐서는
확언할 수 없다는 것이다. 기록을 대하는 1차적 태도는 의심이다. 어느 한쪽 편을 들지 말고.
중국 기록을 편들어서 고구려왕이 죽었다고 믿는 건 본인 마음이지만 그게 사실인 것처럼
떠벌리고 다니는 건 문제가 있겠지?
잘 읽고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