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조반정의 과정 2 부담스런 이야기

한편 신경전의 아우 신경유(申景裕)는 북병사 이괄(李适)을 설득해 함께 참여하기로 했다. 또 이후원(李厚源)은 이이분에게 동참을 권유했다. 그런데 이이분은 일이 성사되지 않을 것을 우려해 그의 숙부 이유성에게 알렸고, 이유성은 김신국에게, 김신국은 박승종에게 이 일을 고해바쳤다.

김류 이귀 등이 방금 군사를 홍제원에 모아 오늘밤에 대궐을 침범하려 하는데, 훈련대장 이흥립이 안에서 내응할 것입니다.

거사 사실이 알려지자, 대신과 금부당상들이 급히 대궐에 모여 들었다. 그 시각 광해군은 김상궁과 함께 유흥에 빠져 있었다. 미리 김자점이 술과 안주를 푸짐하게 준비해 김상궁에게 보냈던 것이다. 바로 이 때 고변의 글이 올라왔지만, 광해군은 개시의 말대로 묵살해 버렸다.

313, 인조는 친위 부대를 거느리고 연서역(延曙驛) 마을에 주둔하고 있었다. 대장격인 김류, 부장 이귀와 최명길 김자점 심기원 등은 사병 6~700여 명을 거느리고 홍제원에 모였다. 그런데 대장으로 정한 김류가 도착하지 않아 반정군 내에 동요가 일기도 했다. 김류는 고변이 올라갔다는 말을 듣고 주저했던 것이다. 반정군이 이괄을 새로이 대장으로 삼아 거사에 나사려는데, 뒤늦게 김류가 도착했다. 그 바람에 김류와 이괄 사이에 불화가 생겼다. 결국 이귀 등의 중재로 반정군은 다시금 김류를 대장으로 삼고 대오를 정비했다. 능양군은 몸소 연서역에 나아가 김류의 군사를 맞았다.

김류는 군사를 이끌고 지금의 북문(北門)인 창의문(彰義門)을 거쳐 창덕궁 앞에 이르렀다. 반정군은 이흥립의 내응을 받아 돈화문은 도끼로 찍어 열고 인정전으로 치닫는 한편, 창덕궁 안 함춘원(含春苑)의 나무섶에 불을 놓았다. 사전에 이들은 가족들에게 궁중에 불길이 일어나지 않거든 자살하라고 일러 놓았고, 이제 반정이 성공했음을 알리고자 불을 지른 것이다.

광해군은 황급히 달아나다가 내시에게 종묘에 불이 났는지 알아보라고 했다. 종묘에 불을 질렀으면 역성혁명(易姓革命)이요, 그렇지 않으면 자기를 폐립시키려는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종묘에 불이 난 것 같다는 말을 들은 광해군은 탄식했다.

이씨의 종사가 내게 이르러 망했구나.(연려실기술23, 인조조고사본말 계해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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