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럼 이 별 것 아닌 것처럼 보이는 차이가 해석에 있어서는 왜 엄청난 차이로 벌어질까? 당시 소련군이 감당해야 하는 작전 지역에 대한 인식을 싹 빼버리고 얘기하면 간단하게 눈속임을 할 수 있다. 보통 10만 정도의 병력이라고 하면 한국사람들은 대군이라고 생각한다. 자신들이 사는 한반도를 기준으로 보면 10만 병력으로 전면전 치르는데 별 문제없으니까.
그런데 전선만 수천 킬로에 이르는 만주 지역에서 10만이 충분한 병력일까? 이 병력 풀어놓아봐야 제대로 점령할 수 있는 지역 전체 면적에 비해 얼마 안된다. 그러니 필요해지는 숫자가 달라진다. 독일과의 전쟁이 끝나고 3개월 정도의 시간이 있었으니 10만 정도 정예병력의 단위는 어떻게든 극동으로 이동시킬 수 있다. 그리고 정말 중요한 작전은 이들이 맡으면 되고, 이들을 목격한 사람은 나름 소련 정예군은 초전에 만난 경험을 갖고 있는 셈이다. 그리고 이런 경험을 찾아내서 떠벌이면 소수 사람들의 기억으로 수십만 수백만 명의 경험을 덮어버릴 수 있다. 이게 실제로 역사를 조작할 때 흔히 써먹는 수법이다.
그렇지만 당시 만주에서 한반도북부에 이르는 광대한 지역을 이 정도 정예 병력으로 다 점령하기는 무리다. 그렇다고 너무 많은 지역에 소련군이 진주하지 않고 방치하면 나중에 소련 점령지역에 대한 영향력이나 명분에서 문제가 생기니 그렇게 할 수는 없고.
그러니 소규모 전투라도 치르며 빠르게 진격한 일부 부대와 주요 거점을 무혈 점령한 부대는 질적으로 차이가 나게 마련이다. 그리고 소련군은 대부분의 주요 거점을 무혈점령했으니 그 부대들이 전투력을 갖추지 않아도 되는 거였고, 그래서 주요 거점에서 소련군을 목격한 사람들 대부분이 이런 부대를 목격하게 된다.
사실 ‘극동 소련군이 질적으로 떨어지는 부대였다’는 말은 대부분의 부대가 그렇다는 뜻이지 정예부대가 하나도 없었다는 뜻은 아니다. 제대로 된 사람이라면 이런 정도는 감안하고 본다. 그런데 이 말꼬리 잡기 좋아하는 족속들은 제멋대로 마치 극동 소련군 중에는 정예부대가 하나도 없었다고 한 것처럼 몰아놓고 이를 이용해서 지금 덧글 등에 올리는 문제점을 만들어내고 있는 것이다. 그러니 레드아이의 말대로 ‘지적할 게 엄청 많아질’수밖에 없는 거고.
이렇게 내막 알고 보면 이들이 무슨 대단한 문제처럼 떠벌이는 것들이 별 거 아닌 요소임을 알 수 있다. 그런데도 이들 지금 어찌 나오고 있나? 남에게는 오타 하나, 표현 문제 하나 물고 늘어지면서도 자신들이 고의적으로 이런 요소를 조작해 내는 데에는 눈꼽 만큼의 미안함도 없다. 이들이 이런 짓을 하는게 역사에 대한 관심 때문일 것 같은가?
- 2013/03/23 07: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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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덧글수 : 48
지금 타격을 받느니 주느니 하는 상황이 아닐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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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타인호프의 함께 꿈꾸는 둥지 : 블레이드님, 질문 하나만 드리고 싶습니다. 2013-03-23 10:46:21 #
... 기억과 사료의 조작 3 이번 소련군 논쟁과 관련해서 블레이드님의 생각을 알고자, 너무도 궁금해서 트랙백을 달아 질문을 드립니다. 간단한 질문이니 꼭 좀 답해주셨으면 합니다. 1. 대 ... more
덧글
밑바닥씨, 10만을 옮긴 게 아니고 100만을 옮긴 거거든? 사료왜곡 대박이네.
10만은 8월의 폭풍 작전 동안 나온 양측 전사자를 합한 수야. 역사학자란 자가 사료왜곡하면 이미 끝난 거 아닌가? 이거야 원 후지무라 신이치와 다를 게 뭐람?
"보통 10만 정도의 병력이라고 하면 한국사람들은 대군이라고 생각한다. 자신들이 사는 한반도를 기준으로 보면 10만 병력으로 전면전 치르는데 별 문제없으니까."
이건 본인 감상일 뿐이지 어떤 증명 능력도 없는 문구에 불과하죠
또
"실 ‘극동 소련군이 질적으로 떨어지는 부대였다’는 말은 대부분의 부대가 그렇다는 뜻이지 정예부대가 하나도 없었다는 뜻은 아니다. 제대로 된 사람이라면 이런 정도는 감안하고 본다"
이건 학술적 표현능력 자체의 문제인데 저렇게 무차별적으로 일반화 시키는 표현을 해놓고 "제대로 된사람이라면.." 이라고 발뺌하는데 이게 무슨 객관성을 담보하는 표현이랍니까?
당사자는 이걸 말꼬리 잡기로 보나본데 아주 질 나쁜 자세죠. 변명을 하려면 오해의 소지가 있다는 점을 명시해야지 저렇게 '제대로 된 사람이라면...' 으로 빼는건 아주 비겁한 표현법인거죠.
http://www.amazon.com/Soviet-Operational-Tactical-Combat-Manchuria/dp/0415408636
이책은 읽고서 그런 소리를 해야지.
걸프전을 가지고 병력 이동시간을 계산하고 자빠졌는데, 걸프전은 해상과 비행기로 이동한데다가, 이라크의 생화학 무기때문에 생화학 대비 훈련까지 소모해서 걸린거거든요.
그거하고 45년 소련의 만주침공의 병력 이동을 비교하는게 무리수죠.
게다가 그 열차와 선로 대부분 미국이 렌드리스로 지원해준 막대한 분량이라서 한달동안 100만이 이동 가능했던걸 그렇게 못믿나?
알아서 챙겨보던지.
당신 학자요 아니면 사이비 논객이요?
글랜츠 대령 논문을 한 번이라도 읽고 그런 주장을 하시지. 개정본도 필요 없어. PKKA님이 번역한 83년 논문이면 충분하니까. 왜, 읽으면 자기 주장이 폭삭 무너질 것 같아서 못 읽나?
남이 말하는건 무조건 조작이라고 징징대는 어린이 헛소리와 다름없는 태도로 일변하시는 이 글들은 진짜 보기가 역겹네요
한번 환국관련 주장으로 억로 끌다가 차단받은 모 중생마냥 밸리에서 밴 당하셔야 정신을 차리시려나요
'그러니 소규모 전투라도 치르며 빠르게 진격한 일부 부대와 주요 거점을 무혈 점령한 부대는 질적으로 차이가 나게 마련이다. 그리고 소련군은 대부분의 주요 거점을 무혈점령했으니 그 부대들이 전투력을 갖추지 않아도 되는 거였고, 그래서 주요 거점에서 소련군을 목격한 사람들 대부분이 이런 부대를 목격하게 된다.'
-> 당연히 차이가 나겠지요 아예 전투 수행 방식이 다른데
그런데 명백히 소련이 '침공'한 입장인데 그쪽 분 주장처럼 '제대로된 전투력'을 갖추고 오지 않았다는게 말이나 됩니까?
만주가 넓다 하지만 160만이 점령하는데 모자란 수치는 절대 아닐텐데요.
당장에 관동군이 100만이 약간 넘는 숫자인데 그럼 일본도 만주를 제대로 점령하고 있지 못했다는건가요? -_-;;
지금 문제가 되는건 오타논쟁이 아니라 기본적인 숫자부터가 안맞는게 문제가 아닐까 싶습니다.
6.25 때 병사가 몇명 동원됐는지 모르는 것도 아니실텐데...
남한쪽 120만명에 북한쪽 120만명이였으니
그것에 비하면 오히려 적을지도 모르겠네요.
하지만 10만명은 너무 했어요.^^:
제가 아래에 언급한 관동군 제 1방면군은 10개 사단 이상에 병력이 거의 20만입니다. 그게 박살나서 손해가 3할이 넘어가는게 '소규모 전투'......대규모 전투 한번 벌이면 인류 멸망하겠네요.
그리고 아무리 관동군이 후지다지만 그걸 10만 정예만 갖고서 격파하다니, 소련군 정예는 어디 드래곤볼 월드에서 스카웃한 모양이군요. .
한반도만 해도 10만명으로는 한 지역 담당군정도가 될텐데...
유엔연합군 120만명 북한중공 연합군 120만명.
블레이드님은 소련군이 10만이라고 한게 아니라 정예병이 10만이라고 한거다.
유에는 없는말 지어내기 스킬을 시전하는군.
블레이드님의 말씀하시고자 하는바
10만 정예병력=비유적인 표현.
비유적인 표현은 정확한 숫자를 말하기 힘들때 대략적인 개념으로 말하는것인데
이게 무슨놈의 일반화? 어이가 없군.
10만정병으로 일본관동군 무찌르는게 불가능하다?
관동군 구성원중에 조선인들도 많다(조선인들은 어떻게든 탈영하려고 했다).
때마침 일본이 항복했다.일본 본토로부터 보급품 중단?
관동군은 내버려둬도 자중지란이 일어나는 상황이다.
이런 상황에서 관동군이 본토지원 없이 수십만?을 유지하는게 쉬울까?
100만 군대가 보급품 없이 사흘 굶어보라.1만군대에도 무너지기 쉽다.
뭘 좀 알고 말해라. 당시 8월의 폭풍에 참가한 소련군은 157만, 그 중 100만이 독소전을 치르면서 강해진 정예였다고, 멍청한 안시성. 몇 번 말하는데, 불가촉천민으로 취급받기 싫으면 사료를 날조하지 마라.
이미 태평양전쟁 말기가 되면 구 일본제국 전역에 있어서 일본 본토는 자원을 빨아댕기는 블랙홀이 되었다는 사실을 모르네요. 자중지란은 일본 본토에서 벌어지고 있었어요! 호갱님! 그러니까 호갱님이 호갱이란 소리를 듣고 사는 거에요!
꼬꼬닭도 겉이 남루한 정병과 겉이 남루한 오합지졸의 차이점은 구분한다.
수백만이 무뇌라서 정병을 오합지졸로 착각했다고 우기는 안티.
남한국방부에서 북한군 탱크와 북한군 특수부대 20만?이 무적의 부대라고 떠들어대면
안티들은 북한군 탱크=3류 그지 깽깽이.북한군 특수부대 20만?=둔전병 오합지졸.
이러며 남한국방부에서 뻥을 치며 예산달라고 떠든다고 안티들이 떠들어댄것은 생각지도 않니?
이거나 봐, 안시성 멍청아.
참으로 수준낮은 놈이네.
이글루스 식민빠들도 원래 수준이 낮은 거야 정평이 나있지만 이제는 하다하다 저런놈하고도 붙어쳐먹으니 쯔쯔
북한군 전차에 대해서 어떤 의견을 갖고 있는지 물어볼 수 있을까요? 그리고 특수부대 20만이 둔전병 오합지졸이라는 공식은 누가 주장했나요? 존재하지도 않는 존재에 대하여 증명하기 위해서 말이 되지도 않는 개소리를 헐떡이는 우리 호갱님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눈물을 흘리고 있어요. ㅠㅠ 호갱님. 북한군 전차가 구식화되었고(그나마 현대화하려는 노력이 있고, 계속하여 신형 전차가 나오고는 있지만 수량이나 정보 파악이 어려우니 일단 패스), 특수부대 20만이 스타처럼 고스트 20만이라고 생각을 하시나보네요. 헤헤헤헤.
블레이드님이 말한 증인 수백만이 카메라로 촬영했다면 아마도 너희의 말이 반대로 바뀌었을걸~
예전에는 사고가 발생해도 카메라가 부족해서 증언들로만 사실증명이 되었는데
요즘은 카메라가 흔해서(스마트폰) 사건 증명이 쉬워졌다.
유에야 너나 그외의 안티들이 북에 핵무기 없다고 날뛰던 시절은 생각 안나니?
그당시에 핵무기 있다고 말하면 다구리(집단폭력)당하던 시절이었다.
그때 안티들이 내세우는 근거는 북한은 둔전병이고 무장이 거지 같아서 핵이 없다는 논리였다.
어디서 되도 않는 날조야, 이 불가촉천민이?
블레이드님이 말한 거지부대에 대한 목격은 결국 전투력 증명이 안된다고 누차 말했잖아요. 보병의 장구류가 기갑부대의 전투 능력을 입증합니까? 아니면 공군의 기체를 증명해줍니까? 해군은 또 어떻고, 지휘부의 실태는 어떻고요? 호갱님 ㅠㅠ 말 돌리는 모습을 보니 무척이나 안타까워요.
그리고 핵 없다고 날뛰던 안타기 누군지 딱 지적해보시고, 둔전병에 무장이 거지 같아서 핵이 없다는 논리를 또 누가 했는지 말해보시라니깐요? 그냥 우기시면 호갱 소리 밖에 못 들어요 ㅠㅠ 호갱님.
유에 친구들이 그랬으니 유에도 그랬을거라 짐작해서 말한거다.
아니면 말고~ 안티들이 하는 수법인 아니면 말고를 나도 따라해봤다.
8월의 폭풍 당시 참가한 소련군 157만 중 100만 가량이 독소전을 치른 정예였다는 사실은 어떻게 설명할 거냐?
http://www.hanbal.com/review/review178/jochan.htm
1944년 12월 현재로 소련이 가지고 있는 육군은, 여러분, 놀라지 마십시오.
48개 야전군 500개 사단이었습니다.
500개 사단 안에는 아무 무장도 하지 않고 폐품 옷을 입혀놓고 거의 맨발로 편성되어있는 사단도 있었습니다.이 사단은 무엇인가 하면 지뢰제거 사단입니다.
지뢰제거 사단은 무엇인가 하면 지뢰지대에 맨발로 들어가서 하나 터트려서 죽는 것이 임무입니다.지뢰지대를 안 들어가겠다고 하면 뒤에서 총을 들이대고 사격을 해 죽이니까 이래도 죽고 저래도 죽는 것입니다. 이런 식으로 소련 사람들은 인간을 관리했습니다.
1945년 5월 엘베강에서 만난 주코브에게 아이젠하워가 "소련군에 지뢰제거 사단이라는 것이 있다는데 사실이오?"하고 물으니까 주코브가 "당신네들 미국사람들 이상한 기계를 가지고 찾아다니는데 그러다가 사람들 더 많이 죽어. 우리처럼 사람을 투입시켜 펑펑 터트리면서 가는 것이 더 빨라."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래서 150만 명을 13만 6천여개의 객차에 실어서 모두 만주 가까이로 옮겨놓고 1940년 8월 6일 히로시마에 원자폭탄이 투하되고 나니까 이틀 후에 바로 병력을 투입하여 우리나라 웅기에 들어온 것이 8월 10일입니다.
제1 극동 전선군은 4개 제병협동군 (제5군, 1 적기군, 35군, 25군), 1개 기계화 군단(제10 기계화 군단), 추구엡스크 작전 집단, 항공군(제9 항공군), 기타 예비대를 가졌다. 전선군의 총 인원은 586,589명으로 31개 소총병 사단, 1개 기병 사단, 12개 전차 여단, 2개 기계화 여단, 기타 지원 부대를 가졌다. 작전 정면은 700 Km 였고 소련 극동군의 37.2 퍼센트였다.
제2 극동 전선군은 3개 제병협동군 (제15군, 16군, 2 적기군), 1개 독립 소총병 군단 (제5 독립 소총병 군단), 쿠릴 작전 집단, 1개 항공군(제10 항공군), 기타 예비대를 가졌다. 전선군의 총 인원은 337,096명이고 작전 정면은 2,130 Km 였다. 제2 극동 전선군은 세 전선군 중 가장 작았으며 극동 소련군의 21.4 퍼센트였다. 그리하여 일본군을 상대로 투사가 가능한 소련군의 전력은 150만이 넘었다. 화포 26,000문, 전차와 자주포 5,500대가 이 인력을 지원했다... (중략)
소련군은 서서히 전쟁 첫 2년간은 부재했던 1930년대 이래의 소련군의 교리 개념 수행 능력을 발전시켰다. 종심 작전은 처음에는 비싼 댓가를 치렀지만 다시 가능한 것이 되었다. 교리의 성숙과 기동전 기술에 대한 교육은 소련군의 편제를 더욱 세련되게 만들었다. 1945년에 소련군 편제는 완전히 성숙되었다. 소련군은 많은 인력 손실 때문에 인력을 화력, 기동성, 기계화로 대체했다. 소련군은 새로운 전술적 무기를 성공을 거두기 위해 신중히 편제표에 섞었다. 군 편제 정리를 마지막으로 한 만주 만큼 군 편제가 뛰어났던 적은 없었으며 만주 전역의 군 편제는 전후의 개혁에 반영되었다.
1945년 8월, 전선군의 가장 기본적인 제대는 제병협동군이었다. 1945년의 일반적인 제병협동군은 3개 소총병 군단, 7~8개 사단, 1~3개 포병 여단, 대전차 여단, 방공 사단, 박격포 연대, 통신 연대, 전투 공병 여단, 2~3개 전차 여단이나 연대, 그리고 전차나 기계화 군단이었다. 전선군 수준의 지원은 자주 이 편제를 강화했다. 제병협동군의 전력은 인력 80,000~100,000명, 전차 320~460대, 화포 1,900~2,500문, 자주포 100~200 대였다.」- 데이비드 M. 글랜츠, Leavenworth Paper No. 7, August Storm: Soviet Strategic Offensive in Manchuria
한 마디만 한다. 저거 읽고 반론 걸어라. http://pkka1918.egloos.com/1021047 가면 처음부터 읽을 수 있으니까. 어디가 거지부대냐?
위에서 언급한 10만과 달리 여기에선 150만명이나 나왔어요! 그리고 블레이드님이 곧바로 8월 9일에 바로 전쟁 선포했다는 말과 달리 이미 전부터 소련군이 병력 이동을 준비했네요. 이를 어떻해 ㅠㅠ 우리 호갱이 결국 큰 일을 내버렸어욧!
네가 말한것을 읽어봤고 블레이드님의 글도 읽어봤다.
내가 보기에는 네가 말한것에 뭔가 이상한점이 있는데 설명하기는 힘들다.
문제점을 설명하기 힘들기 때문에 너의 말이 옳다 그르다 말하기 힘들다.
그래서 네가 말한 특정부분을 나는 언급치 않는다(정신 승리가 아니라 뭔가 문제가 있긴한데 내 능력이 부족해서 설명하기 힘들어서 그냥 언급 안하겠다는 말이다).
만약 스탈린이 동북아의 일본군 전력을 충분히 숙지하고 곧 패망할 것을 알고 있었다면 미군이 차려 놓은 밥상에 염치없이 숟가락 하나 언져 놓은 꼴이 되겠죠. 반면에 일본군을 과대 평가했다면 분명 충분한 전력을 만주에 전개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소련은 일본의 패망 직전까지 외교관계를 유지했고 동시에 연합군 진영의 일원이라 양쪽의 상황을 누구 보다 잘 알고 있었음이 틀림없습니다. 또한 만주 출격에 청년병 보다는 소년병과 노년병을 주로 배치했다면 보다 중요한 유럽의 안전 확보가 우선이고 만주는 전 후 세력 재분배 이상의 관심이 없어 보인다고 볼 수있을 것 같습니다.
암튼 지금의 논의를 지켜 본 봐로는 좀더 직접적인 1차 자료가 필요해 보입니다.
"여기에 첨언하자면, 대조국 전쟁 당시 소련군 정보 기관들(GRU 등)과 전방 지휘관들은 주요 작전 지역에서 적 전력을 과장해서 보고하는게 거의 상례화 되어 있엇습니다. 대조국 전쟁 제1기때 정보기관들이 스탈린을 안심시키기 위해 공세 작전 지역에서 적 전력을 축소보고하다가 망한 사례가 한두번이 아니었고, 적 전력을 과장하면 그만큼 지휘관들이 더 많은 전력을 지원받을 수 있었으니까요.
만주의 경우. 소련 정보기관들의 모든 관심이 독일에 쏠려있던지라 부차적인 위험이 된 일본에 대한 정보 수집 및 분석은 상대적으로 떨어져서 관동군이 4년간 어떻게 약화되었는지 잘 알지 못했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설령 일선 지휘관들과 정보 기관들이 관동군의 상황을 알았다 해도 더 확실하게 작전 성공을 보장하기 위해서 관동군이 스타브카에는 관동군 전력을 과장해서 보고했을 겁니다.
실제 총참모부에서 나온 가장 비관적인 전망으로 9월 초까지 작전이 계속될지도 모른다는 등 아무레도 관동군 전력을 정말로 과대평가한 모습이 많이 나타납니다."
이야, 이것도 반박 못하면서 무슨.
당신 기준이면 의장대가 전투력 최강이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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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답하기 쉬운 4번부터. 정예부대는 선두로 빠르게 진격하면서 정찰과 점령 임무를 수행해야 했으니 당연히 전선에 분산 배치해야 했을 겁니다.
2번은 결국 추정치밖에 안되겠지만, 10-20만 정도 아니었을까 싶은데...
그리고 나머지는 숫자 확인해야 하는데.. 미안한 말이지만 여기서부터는 자료 확인하고 답하려면 시간과 노력이 들어가는 부분이네요. 10원짜리 하나 안 생기는 일에 지나친 힘을 기울일 수 없다는 사정 이해해주길.
그나마 이건 진지하게 묻는 것이니 할 수 있는 건 할 것이고, 시간이 걸리는 일도 기회되는대로 해보겠지만, 물어뜯는게 목적인 자들에게는 이 정도도 아까와서 안하는 거라는 점 감안해주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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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약정리
1. 나는 여태까지 아무 자료도 없이 물어뜯는 사람들을 깔봤다.
2. 나는 군사에 관심가지는 일반인만큼의 지식도 없다.
이럴때 디시 밀갤쪽에선 이렇게 리플을 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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