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독도 편입 3 └ 성고선생의 역사이야기

나가이는 시마네겐 오기도 수기군[周吉郡] 사이고우정[西鄕町] 출신으로 19048월에 량고도’(독도)를 강치(물개)잡이를 하기 위해 임차해 달라고 했다. 그는 이 섬이 한국령으로 믿고 있어서 임차해 달라고 한 것이다. 그는 도꾜로 올라가 농상무성에 량고도를 임차해 달라고 했다. 농상무성 수산국장 마기 부구신(牧朴眞)은 이 섬이 한국령이 아닐지도 모르니 해군 수로부장 기모쓰기 가네유기[肝付兼行] 에게 확인해 보게 했다. 기모쓰기는 조선수로지(朝鮮水路誌)의 편집 책임자로 (’량고도가 한국령임을 알면서도) “’량고도는 주인 없는 땅이며, 본토로부터 거리도 일본 쪽이 10해리는 더 가깝다고 했다. 그리하여 나가이는 내무성 지방국에 량고도‘[독도] 영토 편입 및 대하원(貸下願)‘을 제출했다. 그러나 내무성은 이를 수리하지 않았다.

 

이 시국(러일전쟁)에 한국령으로 여겨지는 풀 한 포기 나지 않는 암초를 얻어 우리를 주목하고 있는 여러 나라에게 일본이 한국을 집어 삼키려는 야심이 있다고 의심하게 하는 것은 득보다 실이 많으며, 일을 성사시키는 것도 결코 쉽지 않다

 

는 것이었다. 나가이는 다시 외무성 정무국장 야마자 엔지로[山座圓次郞]를 찾아갔다. 야마자는

 

현 시국은 량고도편입이 시급하다. 망루를 세우고 무선, 또는 해저전선을 설치하면 적함 감시에 극히 편리하므로 외교상 내무성과 같은 고려는 필요하지 않다. 모름지기 속히 원서 (願書)를 외무성으로 회부시켜야 할 것이다

라고 했다. 그리하여 1904929일 내무성 지방국은 다시 나가이의 독도 영토 편입원을 접수했다. 그리고 1905(광무 9) 110무인도 소속에 관한 건”, 량고도를 일본 영토로 편입해 다게시마로 명명하고 시마네겐 소속 오기도사의 소관으로 하는 안을 내각에 요청했다. 내각은 128일 각의를 통과시켜 215일 내무성에서 훈령 제87호로 각의의 결정을 관내에 고시하고 시마네겐 지사에게 지령해 시마네겐 고시 제40호가 발령하도록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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